언젠가 끝내는 고립을 피할 수 없다면 그때는?
"이게 다 외로워서 그래"라는 말을 요즘처럼 자주 하던 때가 있었던가.
몇 년 전에, 아마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한중간이었던 것 같다. 다른 동네에서 자취를 하던 시절에 특정 권역의 여성 1인 가구 생활자를 위한 오픈채팅방이라는 곳에 들어가게 됐다. 지금은 이사를 오긴 했지만, 그쪽에서 오래 살기도 했고, 언젠가는 다시 이사를 갈지도 모르고, 가끔 놀러 가기도 하니까, 맛집 추천이나 좀 받으려는 요량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괜찮은 미용실 추천도 받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분위기는 갈수록 조금씩 이상해졌다. 특정될까 봐 염려되니 구체적으로 쓰지는 않겠지만, 몇몇 사람들이 자기 삶에서 맞닥뜨린 다종다양한 불행을 한없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너도 나도 이른바 '불행배틀'을 하는 게 아니라 몇 사람만이 그랬다. 그러다 보니 푸념을 하는 소수, 그들을 어떻게든 위로하려는 소수 빼고는 대체로 말을 삼가게 되었다. 누군가 가끔 용기를 내서 대화방을 따로 개설하라든지, 그런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별 소용은 없었다. 나 역시도 일 때문에 확인하지 않는 사이 300+개씩 대화 로그가 쌓이는 대화방에 처지는 이야기만 잔뜩 있는 게 질려서 한참을 안 봤다. 그러다가 대화방 운영 공지를 제때 보지 못해서 쫓겨났다. "언젠가 도움이 될지도 몰라"라는 마음에 미적거리고 있었는데, 차라리 물갈이를 해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내 입장에서야 좀 성가실 뿐이지만, 관점을 좀 바꾸어 보면 가여운 사람들이다. 그 오픈채팅방의 개설 목적 자체가 1인 가구 간 커뮤니케이션에 있었고, 성격상 대화방에 속해서 저러고 있는 사람들은 타지에서 이사를 와서 혼자 산다거나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니까 아마도, 가족도 친구도 가까이 있지 않아 당장 기댈 만한 곳이 없으니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익명의 구성원이 잔뜩 있는 오픈채팅방에 푸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시 익명성의 폐해를 별로 의도치도 않게 가까이서 보는 느낌이랄까, 곱씹다 보니 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저런 사람들이 사이비나 극단주의 정치 세력에 포섭되기 딱 좋다. 외롭기 때문이다.
당근 동네 커뮤니티에서 '경찰과 도둑' 모임이 유행했고, 최근에는 '감자튀김 같이 먹기 모임'이 유행하는 현상도 비슷한 동기에서 출발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누군가와 절실히 연결되고 싶다는 소망. (여담이지만 '경도' 모임은 사이비를 비롯한 각종 종교꾼 창궐로 박살이 나는 추세라고 들었다. 사회적 신뢰 자본에 기생해 공동체를 좀먹는 버러지 같은 것들.) 나만 해도 '경도' 모임 유행을 알았을 때 배우자와 같이 나가서 동네 친구를 사귀면 좋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동했던 적이 있다. 결국 안 나갔지만.
어찌 됐든, 나도 당장은, 수는 적지만 꾸준히 교류하는 친구들이 있고, 배우자도 있고 원가족도 있고 직장도 있다. 하지만 혹여라도 유사시에 내가 무리동물로서 고립의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동체 같은 건 산업화와 도시화와 재개발 재건축 등등등등등의 과정에서 다 증발한 지 오래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니 소셜미디어니 하는 건 대안이 될 수 없다. "Touch grass"라는 영미권 온라인 커뮤니티의 격언(?)이 적절하다. 사람은 흙을 밟고 풀을 만져야 한다. 그리고 사람을 면대면으로 만나야 한다. 근데 딱 여기까지만 생각이 미치고 해법을 못 찾겠다. 역시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