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24일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마다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과 10분 남짓 수다만 떨고 온다. "좀 어떠세요?"라는 말을 출발 신호 삼아서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말을 주절거린다. 집안일이 하기 싫어요. 방이 지저분해요. 요즘도 게으르게 살고 있어요. 기타 등등.
길어지는 통원치료에 조금 진력이 났기 때문에, 병원에 가기 전에 할 말을 정리하는 절차도 생략한 지 오래되었었다. 하지만 저렇게 아무 말이나 뱉다가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남들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말도 얼떨결에 함께 끄집어낼 수 있었다. 그냥 인정하자. 나는 '우울증에 걸려서도 꽤 쓸모가 있고 친절하며 쾌활한 인간'임을 줄곧 증명하고 싶어 했다.
적어도 제도권 교육 기간 12년 동안, 그리고 그 이상의 시간을 '모범생'으로 살면서 정상성의 획득이라는 목표를 끝끝내 놓지 못했던 사람에게는 굉장한 발전이다. 정상성의 척도는 자아의 외부에 있기 때문에 정상성을 100% 획득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할뿐더러, 스스로를 꽤 좀먹는 일이다. 쉽게 말해 남의 눈치만 살살 보게 된다는 것인데, 막말로 내가 당장 죽게 생겼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을 최근 많이 했다.
그리고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게 된 데는 7000~8000원 남짓한 돈을 내면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전문가가 내 편만 들어주는 10여 분간의 시간들이 도움이 많이 됐다. 벼랑 끄트머리를 발가락으로 간신히 디디고 있을 당시에는 치료제가 내 손목을 힘껏 끌어당겨서 떨어져 죽지는 않게끔 도와주었다. 그 뒤로 의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기거나 걷거나 하면서 낭떠러지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중이다. 나아진다는 건 그런 것 같다.
어쨌든 나는 내 안의 모범생이 다시 고개를 들려고 할 때마다 '일단 살고 봐야지'를 주문처럼 외면서 온갖 모래주머니들을 조금씩 떼어 내기로 했다. 그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어차피 밥줄까지 다 놓아 버리고 아무렇게나 살 수 있는 위인도 못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