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하지 않은 정신병자에 대해
우울증은 불편하다.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렵게 만드는 병이다. 하지만 코감기에 걸려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냄새를 맡지 못하고 숨을 쉬기 어렵고 잠도 제대로 이룰 수 없다. 하지만 남들에게도 정말 그게 다일까?
지난달 초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남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최대한 뭉뚱그려서 적어 보자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두고 '저 사람은 우울증 환자이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모함을 했던 일이 꽤 오래전에 있었다. 모함을 당한 사람은 당연히 우울증을 앓고 있지 않았고, 설사 우울증을 앓고 있더라도 저런 식의 공격은 문제가 된다.
저 일화를 모를 당시 나는 치료제의 '약빨'을 한껏 받아 무척 고양된 상태였으므로, 내 병증에 스스로 유감이 없다는 것이 마냥 기꺼웠다. 가까운 사람에게 병증을 알리는 데도 크게 거리낌이 없었다. 다만 돌이켜 보면, 운이 좋게도, 약점을 털어놓더라도 기꺼이 감싸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환경에 우연히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나 요즘 정신과 다니고 있어"라는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이 손을 대면 바로 터질 것 같은 물체를 보는 듯한 기색을 내보이며 조심스러워하는 것은 극히 양호한 반응이었다. 외부 자극에 취약한 상태를 감안한 배려이기도 하고, 누군가 나를 '미친년', '사회에 잘 섞여 들어갈 수 없는 불순분자' 따위로 규정하리라는 데 대한 걱정이기도 하니까 그렇다. 친구 한 명은 몹시 걱정하며 '사람을 조심하라'라고 당부하기도 했었다.
병원에 가기 전후로 내 본질이 달라진 적은 없다. 하지만 내가 정신과에 다녀왔음을 관측하는 순간 나는 '미친년'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정상인'이 된다. 무슨 슈뢰딩거의 미친년도 아니고. 관측자 중에는 나의 병증을 쥐고 흔들 만한 약점 내지 큰 흠으로 여기는 치들도 분명히 있을 터다.
그래서 나도 결국은 '우울증에 걸려서도 꽤 쓸모가 있고 친절하며 쾌활한 인간'임을 증명하려 들었다. 글을 쓰게 된 동기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거기서 나왔을 것이다. 웃기는 일이다. 나는 그냥 평생 세심하게 관리해야 하는 병이 있는 환자다. 그게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