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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Aug 13. 2021

관계를 소중히

2021년 8월 7일

     이마에는 혹이 하나 달리고 콧잔등에는 뻘겋게 멍이 들었다. 양 무릎에도 시퍼렇고 근사한 멍이 하나씩 생겼다. 휴가 사흘째 되던 날, 일 걱정을 하나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에 겨워서 5시간 넘도록 낮술을 마시다가 대취해서 유리창에 부딪히는 바람에 이 사달이 났다. 휴가 첫날에는 두 명이서 청하 6병을 작살냈고, 둘째날에는 칵테일 한 잔에 소주 한 병씩을 비웠으니, 아무래도 셋째날까지 혹사당하던 간이 더는 못 살겠다며 파업을 선언한 모양이다. 덕분에 세수할 때마다 신음을 속으로 삼키고 종일 냉찜질을 했다. 갓 술을 배우던 스무 살 무렵에도 안 하던 짓을 지금 하고 있다. 이마에 차가운 맥주병을 굴리다 정신을 차린 나를 보며 친구가 미안한데 너무 웃겼다고 사과했지만, 나조차도 만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 웃기니까 별로 상관은 없다.


    어쨌든 더없이 유쾌한 기분으로 진료를 받고 왔다. 실로 오랜만에 어떤 근심도 없이 순수한 즐거움만을 느끼고 있다. 내 기분을 곤두박질치게 하는 8할 이상의 원인은 밥벌이다. 특히 연봉이 삭감 내지는 동결될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는 간신히 평정심을 떠받치던 지지대 같은 게 무너지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내가 화를 내는 걸 본 친구가 몹시 걱정하며 전화를 해 왔는데, 통화를 시작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았을 때부터 눈물 콧물을 다 빼면서 울었다. 나이를 먹으면 웬만큼 속이 상해도 울 일이 별로 없는데 그렇게 울었던 건 우울증이 가장 심했을 때, 그러니까 거의 석 달 전 이후로 처음이었다.


    실은 최근 들어 유독 사는 게 고단하게 느껴졌었다. 목숨을 붙이고 생명 활동을 이어 나가는 것 자체가 힘에 부쳤다. 살아야 할 이유를 열심히 찾아 봤어도, 그런 건 못 찾았고 당위만 잔뜩이었다. 태어나 버린 이상은 살아야 한다. 내 의지로 태어난 게 아니더라도 그래야 한다. 왜냐면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이 됐든 친구가 됐든 직장 동료가 됐든, 30년 이상 씨실과 날실처럼 촘촘하게 얽힌 사회적 관계의 그물이 날 받쳐 줬기 때문에 나도 그들의 삶을 이루는 씨실과 날실 중 하나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사는 게 힘들다고 혼자 쏙 빠져 나가다니 안될 말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지만 내 귀에는 그냥 개소리다.


    엉엉 울면서 그런 얘기를 했더니 친구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사는 거지!"라는데 지금의 나에게는 꼭 필요한 말이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게 아니라는 데 대한 위안 같은 거였다. 삶에서 이유를 찾으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다들 태어난 김에 산다. 대단한 인류적 사명 같은 걸 띠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또다른 친구는 살아야 할 이유 같은 것을 계속 고민하면 우울해질 뿐이니, 그 대신 죽어야 할 이유를 찾아 보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모든 게 하찮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서 조금 고민해 봤다. 사장이 연봉을 후려치려고 들어서, 내가 가진 생득적이고 후천적인 성실함과 상냥함 따위는 평가 대상조차도 되지 못해서, 뭐 그런 것들. 대체로 일과 관련된 고민들인데, 그 중 어느 것도 내가 죽어야 할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세 끼 밥을 먹고 살려면 아마 높은 확률로 평생 노동을 하며 살아야겠지만 그것도 삶을 이어 나가는 수단 중 일부다. 도구가 내 본질을 위협하려 들 때 쉽게 굴복하지 않을 만큼의 존엄성은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삶은 대체로 고통스럽게 나를 죄어 오지만 그래도 살아 있으면 가끔은 즐거운 일이 생긴다. 지금이 그렇다. 내적인 성격 탓에 친교 관계를 넓게 꾸리지 못한다는 게 콤플렉스 아닌 콤플렉스였지만, 그런 건 손에 쥔 보석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애먼 남의 것을 탐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미 좋은 친구들이 많고, 이번에도 좋은 친구들 덕분에 얼레벌레 조직의 부품으로 기능하기만 하던 상태에서 벗어나서 그럭저럭 사람 꼴을 다시 갖추게 되었다.


    첫 진료에서는 계속 눈물을 찍어 내면서 "남들도 다 힘든데 차마 친구들 붙잡고 힘들겠다고는 못하겠어요"라고 했었다. 혹시라도, 어릴 적에 그랬던 것처럼, 자기연민에 휩싸여서 끝없이 푸념만을 늘어놓으며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우울의 구렁텅이에 끌어들일지도 모른다고 염려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수 개월간 치료를 받으며 깨달은 것들이 있다. 지금의 나에게는 자기연민이라는 손쉬운 도피처로 파고들지 않더라도 여러모로 힘든 상황을 견뎌낼 만한 힘 정도는 있다는 것, 그 덕에 친지들에게 건강한 방식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도 관계를 맺는 건 중요하다고 했다. 꼭 어떤 해답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그 자체로 힘을 얻을 수 있는 거라면서. 물론 받기만 할 생각은 없고, 기력이 허락하는 대로 나 또한 다정함을 나누면서 살려고 한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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