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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Nov 10. 2021

새우의 모가지를 비틀면 새벽은 안 온다

내 입에 들어간 목숨들에 대한 경의

    생새우 회는 물에서 갓 건져내서 죽은 지 얼마 안 된 새우를 먹는 게 아니었다. 옹색한 공기를 들이켜면서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새우의 목숨을 직접 거둬서 먹는 음식이었다. 그걸 30여 년 살다가 처음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회식 자리에서였다.


    격렬하게 들썩이는 양재기를 보면서 "쟤 왜 살아 있어!" 따위의 비명을 꽥꽥 지르고 있으니까 선배가 나한테 '초딩입맛'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안겨 주었다. 이때 새우의 생김새 같은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새우의 모가지를 손수 따야 한다는 게 진짜 문제였다. 거의 울상을 하고 펄떡이는 새우를 노려보고 있으려니, 부장이 혀를 끌끌 차면서 두어 개 정도의 새우살을 직접 발라 주셨다.(우리 부장은 정말로, 정말로 좋은 분이다…….)


    사실 나는 연포탕도 잘 못 먹는다. 낙지가 뜨거운 물에 억지로 들어가서 사지를 비트는 모습을 보고 있기 힘들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산낙지를 먹는 것도 힘이 든다. 그런 주제에 육식 자체를 멀리해왔던 것도 아니다. 육식에 이르는 과정 전반을 외주화해 도축이 완료된 뒤, 혹은 가공까지 다 끝난 뒤 식탁 위에 오르는 음식만을 섭취해 왔다. 날 때부터 도시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고 애써 자위하기에는, 그간 삶을 영위하기 위해 섭취해 온 생물들의 목숨에 대한 경의가 부족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재료의 원형을 알아보기 어려운 가공식품 섭취를 지양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지 꽤 오래되었다. 지금도 가뭄에 콩 나듯 그렇게 하고는 있다. 양재기 속에서 펄떡거리다가 모가지를 따는 순간 축 늘어지던 새우들이 갑자기 생각나서, 동물성 단백질 섭취를 줄일 수 있는 데까지는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한다. 새우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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