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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Nov 12. 2021

하늘 아래 같은 지휘는 없다니까요

남들 듣기에는 그거나 그거나

    클래식 팬들은 "응, 느그 오빠 나치~" 하고 싸운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는 바그너와 슈트라우스를 들을 때마다 콧구멍이 커지는 것을 멈출 수 없다.(웃겨서) 이럴 때는 내가 주로 죽은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걸 다행으로 여다. 살아 있는 사람이 사고를 치면 정이 떨어지는데 죽은 사람이 그랬다는 걸 알아도 크게 와닿지 않는 탓이다.


    이역만리 동북아시아에서 동양인 여성으로 태어난 주제에 백인 남성을 두고 "우리 오빠는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하고 씩씩대는 것도 좀 웃기다.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다. 파시즘에 예술이라는 당의정을 발라서 부역자 짓을 했으면 당연히 욕 먹어야지 무슨……. 그냥 신념이나 사상과 예술 사이에 대충 눈 가리고 아웅 하면서 선을 긋고 있다. 뭐, 이중잣대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내 생각에도 이중잣대 맞는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예술인 나치 부역자'를 꼽으라 하면 대충 첫 줄에 이름을 올리곤 하는 카라얀의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좋아하므로 다른 지휘자를 유목민처럼 돌더라도 결국 카라얀으로 정착하게 된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연주자에 따라 곡의 맛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면, 베토벤 교향곡 7번은 곡에도 해석이라는 게 필요함을 일깨워 주었다. 연주자와 지휘자를 가려듣게 된 계기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내게 의미가 있다.


    베토벤 교향곡 7번의 2악장을 가장 좋아한다. 온갖 영화와 드라마의 삽입곡으로 참 많이 쓰여서 더 유명하다. 내가 들려주었을 때 "어, 이게 그거였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최근(?) 영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이라면 <킹스 스피치>(2010)의 조지 6세 연설 장면이 아닐까. 유튜브에서 파도타기를 하다 보니 실제 조지 6세의 육성에 음악을 덧씌운 것도 있었다.


    카라얀은 별다른 특색이 없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인데, 외려 일탈이라고는 한치도 용납하지 않을 듯한 얄짤 없는 지휘가 좋다.


    클라이버는 처음 들었을 때 나까지 숨이 꼴까닥 넘어가는 줄 알았다. 2악장뿐만 아니라 4악장 내내 모든 악기들이 "으아아!!!!! 달려!!!!!!" 하면서 저돌적으로 달려 나가서 당황했었다. 아저씨, 숨 쉬어요, 숨!


    반대로 푸르트뱅글러는 그렇게…… 중후하고 장엄할 수가 없다. 솔직히 내 취향에는 좀 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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