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현 Nov 19. 2021

우리 오빠는 락을 하셨다고

사계 원툴 아니라고

    누가 '비발디는 <사계> 원툴'이라고 하면 나는 막 화가 난다. 사실 거짓말이다. 지금으로서는 작곡가 중 비발디가 최애는 맞지만 막 화가 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지루하기만 하다는 평가는 팬으로서 좀 억울(?)하다. 사계 중에서도 공중화장실이나 기본 컬러링 때문에 많이들 알고 있을 봄 1악장이라든가, 예전에 서울 지하철 환승 구간에서 나왔던 가을 1악장이라든가, 뭐 그런 것만 떠올린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아니(급발진) 다들 여름이랑 겨울은 안 들었나? 우리 오빠는 바로크맨의 몸에 갇혀서 그 시대의 악기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락을 하신 분이다. 심지어 가톨릭 사제였다. 진짜 미친놈 아닌가. 너무 락킹하고 고져스해서 기절할 것 같다.


    특히 마음이 번잡스러울 때는 바흐랑 같이 <라 폴리아>를 가장 많이 들었다.(세상에, 심지어 부제도 '광기madness'야…….) 귓속에 마구 쑤셔 박히는 콩나물에 달팽이관을 맡기고 있으면 잡념이 뇌리를 비집고 들어올 새가 없다. 가장 좋아하는 건 일 지아르디노 아르모니코의 라 폴리아인데, 7분 36초부터 마구 몰아치는 구간을 처음 들었을 때는 거의 컬처쇼크 비슷한 걸 받았다. 내가 쓰는 음원 플랫폼에서는 때려죽여도 못 찾겠다. 아쉬운 대로 유튜브 저음질로 듣고는 있다. 역시 이다지오 정기결제를 해야 하나.


    아폴로스 파이어의 라 폴리아는 너무 멋을 부려서 내 취향에는 좀 느끼하다. 바로크 특유의 비인간적인 면이 비발디한테는 좀 옅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고악기로 그 시대의 투박함이라든가 건조함 같은 걸 최선을 다해 재현하는 편이 더 좋아서 그렇다. 현이랑 활을 다 끊어 버릴 것처럼 우다다 달려가는 맛도 적다. 곡 자체가 그래서 초장에 활줄이 끊기긴 하는데…… 어딘지 좀 부족해…….

매거진의 이전글 하늘 아래 같은 지휘는 없다니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