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작은 사람에게도 불친절한 세상
곧 다가올 겨울을 맞아서 새 잠옷을 샀다. 아동용 중 가장 큰 주니어 사이즈다. 심혈을 기울여 지나치게 알록달록하거나 유치하지는 않은 것으로 고르긴 했다. 사이즈 표를 보고 대충 짐작했으나, 분하게도 내 몸에 맞춘 것처럼 꼭 맞았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 아동용 잠옷을 입어야 하는 처지가 좀 웃기긴 하다. 잠옷 차림을 볼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동안이라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밤에 양치하러 가서 거울을 볼 때 꼴이 우스워서 치약 거품을 뱉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테니.
키가 160㎝도 되지 않는다. 손도 발도 다 작다. 몸집이 작고 마른 어머니를 닮았다. 아버지 쪽 키도 작은 편이었고, 양가 조부모님들도 그렇게 키가 크지 않았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이다.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찾아낸 신체검사표를 보니, 중학교 1학년 이후로 키가 거의 자라지 않았다. 뼈를 잡아당겨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고 속상해하는 것만큼 미련한 일은 없기 때문에 그냥저냥 살고 있다.
성인 여성의 평균 신장에 미치지 못한다는 데 불만은 없을지언정 불편함은 있다. 옷을 살 때가 특히 그렇다. 나는 프리 사이즈가 정말로 프리하다고 믿지 않는다. 그놈의 프리 사이즈는 키가 160㎝가 넘는 사람만이 자유롭게 입을 수 있다고 이름을 바꿔야 한다. 특히 하의가 그렇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모처럼 마음에 드는 치마나 바지를 발견했을 때, 나는 제일 먼저 스크롤을 쭉쭉 내려 피팅모델의 신체 사이즈와 옷의 사이즈 표부터 확인한다. 이때 내가 입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드는 경우는 열 번 중 한 번이 될까 말까 하다.
과체중에 대한 전 사회적인 멸시에 비한다면 키가 작아 생기는 일들까지도 차별의 범주에 집어넣기는 좀 민망하지만, 어쨌든 뭔가가 평균치에 미치지 못하거나 좀 더 넘치거나 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것이 불친절하다. 일례로 키가 작으면 대중교통을 탈 때도 불편하다. 대관절 대중교통 손잡이들은 왜 그렇게 높이 달려 있는 걸까.
남들은 여유롭게 팔을 직각으로 꺾어서 손잡이를 잡을 때 나는 어깨를 한껏 치켜든 채로 갈대처럼 사정없이 흔들려야 하기 때문에 출퇴근길이 더 고되다. 어쩔 수 없이 봉으로 된 손잡이가 있는 쪽에 설 수밖에 없다. 여의치 않은 상황에는 손잡이를 잡은 채로도 엉덩이와 허벅지에 잔뜩 힘을 주고 강제로 균형 잡기 수행을 한다. 이런 식으로 코어 근육을 강화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만큼 키가 작고 힘은 더 약한 어린이나 등허리가 굽은 노인은 더 힘들 것이다. 옷이야 그냥 내가 아동용을 뒤져서 사 입으면 된다지만, 대중교통 손잡이 정도는 지금보다 친절한 위치에 있는 것들이 좀 많아졌으면 한다. 작은 사람도 좀 덜 불편하게 살 수 있게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