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평생 젊을 줄 아느냐
집 근처에 구색이 그럴싸한 수제 케이크를 파는 작은 카페가 있다. 가끔 거기 가서 케이크와 커피 한 잔씩을 포장해 와서 먹곤 했다. 비가 아주 많이 오던 어느 날, 엄마와 동네에서 좀 떨어진 큰 쇼핑몰을 휘젓고 돌아다닌 뒤 기운이 쭉 빠져서 카페인을 도핑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자연스럽게 그 카페를 떠올렸다. 내 마음에 들었던 케이크를 엄마에게도 맛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로 유쾌한 경험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엄마는 스마트폰을 쓰기는 하지만 복잡한 여러 기능을 능숙하게 다루지는 못한다. 말하자면 평범한 중년이다. 집과 작업실만을 오가느라 외식도 잘 하지 않는 터에 '코시국'이 1년 넘게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QR코드로 출입 인증을 하는 데 영 서투르다. 일단 자리부터 찾아 앉았는데, 카페의 남자 아르바이트생들이 짜증과 귀찮음이 역력히 묻어나는 말투로 "QR코드 인증을 하지 않으면 앉을 수 없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설상가상으로 마지막 인증을 한 지 오래되어 휴대폰 번호로 다시 인증번호를 받아야 했다. 엄마는 점점 더 당황하기 시작했다. 엄마를 곤경에서 빨리 벗어나게 해 주고 싶어서 휴대폰을 거의 빼앗듯 한 다음 대신 인증을 했다.
커피와 케이크는 여전히 맛있었지만, 눅눅하고 불쾌한 기분까지 풀어 주기에는 부족했다. 엄마가 단지 전자기기와 최신 기술을 다루는 데 서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시를 당한 것 같아서 기분이 상했다. 모르긴 몰라도 당사자인 엄마는 더 불편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 카페는 아직도 성업 중이나, 그 뒤로 그 카페에 다시 간 적은 없다. 장 보러 가는 길목에 있어 종종 지나쳐야 할 때도, 엄마의 주눅 든 것 같던 모습과 허둥거리던 손짓이 떠올라서 눈길조차 주고 싶지 않다.
그날 그 자리에 내가 없었더라면 엄마는 당혹스러움만 가득 안은 채로 장대비가 죽죽 쏟아지는 바깥으로 다시 쫓기듯 나와야만 했을까. 그 뒤로는 본인인증과 금융 업무 따위를 비대면으로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전제하는 시스템들을 볼 때면 편리함보다는 불편함을 먼저 느낀다. 동생과 내가 용병을 뛰어서 엄마의 1차 백신 접종 예약일을 잡아 주던 날에도, 인터넷 뱅킹을 쓸 줄 모르는 엄마를 위해 하루 연차를 내고 이사에 드는 각종 비용 처리를 대신 해 주던 날에도, 자식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냐는 생각을 했었다.
약하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골고루 박한 사회에서, 나이 들고 느린 사람들에게 박한 사회에서 늙는 것이 무섭다. 지금은 악명 높은 맥도날드 키오스크에서 UI를 나날이 불친절하게 바꾸는 횡포를 부리고 있어도 무리 없이 햄버거를 주문해 먹을 수 있지만, 언젠가는 나도 최신 기술에 금방 익숙해지기보다는 먼저 당황해 버리는 때가 분명히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