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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Dec 29. 2021

사이다의 허망함

그리고 그 참아 주기 어려운 납작함

    나는 무척 사랑하는 친구가 이루 말하기 어려운 고난을 겪은 끝에 그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들을 가까스로 만나는 과정을 지난 몇 년간 옆에서 지켜봐 왔다. 그리고 친구가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 속이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품고 있던 누군가의 시꺼먼 치부가 까발려지는 모습 또한 보고 있다. 이게 생판 남의 일이었다면 그저 흥미진진해하며 '악인의 몰락'을 기다렸겠지만 사람 사는 일이 그렇게 단순해 빠지지는 않았다.


    대체로 '사이다'란 얼마나 허망한가.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이 나지 않는다. 내 친구를 거기까지 괴롭게 만든 치가 그저 낙하하기 위해 올라가 있을 뿐이던 높은 자리에서 뚝 떨어져 만신창이가 되는 모습을 본다 한들, 친구가 받았던 상처가 아예 없던 것이 되지는 않는다. 가장 필요한 것은 치유의 과정이다. 그때 '사이다'는 수단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친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는지를 서서히 깨닫고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만을 가지고 있다. 그게 친구에 대한 나의 사랑이다. 그렇기 때문에, 흘러가고, 때로는 휘몰아치는 모든 일에서 '사이다와 같은 결말'만을 바라는 사람들이 조금 징그러워졌다. 그리고 나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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