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현 Jan 14. 2022

나는 당신의 장기말이 아닙니다

사람을 목적으로 대해 봐라, 좀

    내가 인간관계를 꽤 순진한 관점에서 보고 있음을 새삼 깨달을 때가 언제인가 하면, 자신의 영달을 위해 남을 장기말로 쓰기를 당연하게 여기는 인종을 볼 때다. 대개의 경우 그런 치들에게 나는 장기판 위의 졸 정도로 여겨지곤 한다. '순하고 조용하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나를 찜 쪄먹는 것이 매우 쉽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우습게도 상대방이 그런 의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둔해 빠진 내 눈에도 아주 잘 보인다. 왜냐면 장기말도 보는 눈과 듣는 귀, 생각할 줄 아는 머리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내가 받고 싶은 것을 남에게 해 주는 종류의 사람도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다소간 힘이 들거나 조금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별로 개의치 않으려고 애쓴다. 이런 태도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주 만만하게 보인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을 다정하게 대하려 노력하는 호인이라 한들, 자신을 '써먹고 버릴 패' 정도로 취급하는 사람에게까지 진심을 나눠 주려 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관계란 대체로 상호적이다. 어지간한 바보가 아닌 이상은, 수시로 술잔을 부딪치며 세상 다시없을 정도로 절친한 것처럼 굴었던 지인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자기 보신에만 힘쓴 사람이 나에게만은 그러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까지 너른 마음으로 품고 간다고 해서 삶이 썩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바쁘고, 인생이 너무 짧다. 그리고 다정함을 나누어 주는 데는 퍽 기력이 쓰인다. 나의 다정한 마음을 고맙게 받아 안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데 힘쓰는 편이 낫다.

작가의 이전글 사이다의 허망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