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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Nov 22. 2021

홀로 있되 서럽지 않은 것

그런 게 어디 있냐

    지난주에는 큰 결정을 해야 할 일이 있었고, 예전의 나였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했다. 신뢰할 만한 사람들 몇몇에게 조언을 구한 것이다. 친절하게도 내가 조언을 청하면 다들 기꺼이 같이 고민해 줬다. 덕분에 마음의 짐을 많이 덜고 빠르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언제든 도울 일이 있으면 또 말해 달라고도 했다. 곧장 솔직하게 고맙다고 말했다. 고맙다는 말과 좋아한다는 말은 아무리 많이 해도 부족하지 않다.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입이 닳는 것도 아니고.


    괄목할 만한 발전이다. 첫 진료에서 나는 "누군가 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없냐"라고 묻는 의사 선생님 앞에서 울면서 "다들 힘들게 사는데 차마 힘들겠다고 말을 못 하겠어요"라고 했었다. 우울할 때뿐만이 아니라 늘 그런 식이었다. 자립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 비슷한 게 있어서, 뭐든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 들었다. 나아가 내가 쓸모가 없다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 걱정도 하고 있었다. 난 대체로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려고 노력했지만, 남을 믿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남들에게 다정한 만큼 나 자신에게 너그럽지도 못했다.


    이런 마음을 인정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내 마음을 지옥에 몰아넣고 있었다는 것을 직시하기 괴로웠기 때문이다. 나는 무리동물의 자립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어서, 세상에 나 혼자밖에 없는 것처럼 사는 게 꿋꿋한 것이고 강한 것이고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사람을 싫어하는 줄 알아서, 내게 기꺼이 어깨를 빌려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놓치고 살았다.


    한두 오라기 정도의 실가닥으로는 어림없을 무게를 촘촘한 그물은 너끈히 버텨 낸다. 이제 내게 사람이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삶의 무게를 못 버티고 찢어져서 흩날리지 않도록 옆에서 단단히 붙잡아 주는 존재들. 살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이 남아서 다행이다. 내가 아는 새, 모르는 새 넘치도록 받은 호의는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돌려주면 될 것이다. 호의는 이렇게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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