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볼 때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다
부장한테 '외강내유형'이라든가, '센 언니처럼 보이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 보인다'라든가, '후배들이 너를 무서워한다' 같은 말을 들을 때는 그저 어리둥절했었다. 그때마다 "저는 아주 연약한 초식동물 같은 사람인데요?"라고 항변했었는데, 이제는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초식동물은 맞는데, 긴 엄니를 가지고 있는 고라니 같은 것이었다. 아니면 외부 세계가 내게 적대적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치게 겁을 먹은 나머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숨이 넘어가게 짖는 소형견 쪽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어딘가에 날을 세우고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니까.
아마 부장은 무슨 일이 있든 의연하게 굴고, 남에게 폐를 끼치려 하지 않고, 뭐든 혼자서 해결하려 드는 내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런 말을 했었던가 보다. 내가 보지 못하는 내 모습을 다른 사람이 더 잘 볼 수도 있는 법이다. 저 이야기를 다시 들은 것은 우울증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짚이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던지라 상담치료를 병행하는 것을 고민하기도 했었다. 상담치료 경험자인 지인으로부터 "돈을 내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를 갖는다고 보면 된다"는 후기를 들은 뒤로는 치료 일기를 아주 솔직하게 써 내려가기로 했다. 그게 벌써 반년쯤 됐다.
부장의 조언도, 치료 일기도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던지, 최근에는 '내가 쓸모 있지 않다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속 깊은 염려를 용기 내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었다.(이렇게 처음으로 껍질을 깨고 나왔을 때 부장은 정말 기뻐해 주셨다.) 내가 약한 부분을 드러내더라도 별 일이 생기지 않음을 깨달은 뒤로는 내면을 직시하기도 더 쉬워졌다. 무엇이 저런 쓸데없는 걱정의 단초가 되었는지 역시도 알고는 있었지만 예전에는 인정하려 들지 않았었다. 자아가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예민한 시기에 응당 받아야 할 보살핌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는 것이 내 성장 과정의 콤플렉스 같은 것이었기 때문인데, 그 역시도 시원스럽게 인정하게 됐다.
실마리를 찾아내지조차 않으려던 시절의 나는, 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 지금보다도 건강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똑같이 향상심을 가지고 있지만, 과거에는 외부의 시선에 나를 구겨 넣어 조금이라도 '정상적'으로 보이고자 하는 발버둥이 향상심의 연료가 됐다. 좋은 성적을 받을 것. 이름난 대학에 들어갈 것. 좋은 직업을 가질 것. 그리하여 아무도 나와, 나를 혼자 힘으로 길러 낸 어머니를 우습게 보지 못하게 할 것. 마지막이 핵심인데, 어쨌든 '애비 없는 후레자식' 비슷한 말을 듣는 게 죽기보다도 싫었던 것 같다. 도무지 비뚤어질 수가 없어서 '모범생'으로 자라긴 했지만, 삶의 지향점이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에 있다 보니 별로 행복하지도 않았다.
이제 와서는 인생에서 밝은 면을 대강 찾아내는 게 특기 비슷한 것이 되었기 때문에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 시절의 발버둥 덕분에 지금은 먹고살 만해졌고,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거기에 나이를 먹고 나서는 '정상성'을 강요하는 불특정 다수의 편견에 맞설 만한 힘도 생겼다. 아버지 없이 자란 게 내 잘못은 아니다. 어머니의 잘못은 더더욱 아니다. 콤플렉스를 가지게 된 것도 내 잘못은 아니다. 어떤 부모는 없는 쪽이 나을 수도 있고, 경험상 아버지가 없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다. 그저 '애비 없는 후레자식' 소리를 하는 쪽이 잘못이다. 그러니까 '센 척'을 할 필요도 없다. 마음 편하게,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