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한 번 잡숴 보세요
얼마 전에 내 영혼의 단짝인 후배에게 네덜란드 바흐 소사이어티를 전도한 뒤, 문명이란 참 좋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눴었다. 후배는 편집국에서 야근 중이었고, 나는 데드라인에 맞춰서 온 자료를 받아서 간신히 마감을 치고 뻗어 있었는데, 바흐가 만들어낸 단정한 선율과 장엄한 파이프 오르간은 일에 쩌든 우리를 참 행복하게 했다. 유튜브 덕분에 나 같은 원룸생활자도 집을 CD와 음향기기로 채우지 않고도 대충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예술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아멘!", 뭐 이런 소리들을 했더랬다.
그와 내가 한 회사에서 만나서 심지어 음악 취향까지 비슷하다는 것은 천운 같은 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 왜냐하면 내수 시장이 손바닥만 한 한국 땅에서 클래식판은 한 줌도 아닌 한 꼬집 정도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클래식 음악은 그냥 흘려 넘기기 좋은 배경음악이거나 졸리고 지루한 음악일 뿐이다. 반대로 리스너들은 웬만하면 엄청난 고인물이거나 전공자라서, 나처럼 체르니 30번의 초입까지만 배우고 피아노를 때려치웠으면서 다 늦게 클래식 음악을 들어 보겠다고 대강 기웃대는 사람은 더 드물 것이다.
나름대로 혼자 열심히 소박한 취미생활을 즐기던 와중에 이 좁디좁은 클래식판에서 대중화에 앞장서는 것처럼 보이던 채널을 둘러싸고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서 기분이 조금 좋지 않다.(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구독을 하고 있지 않아 구독취소를 못 하는 것이 애석할 따름…….) 싫은 것에 대해 떠들기보다는 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편이 더 건설적일 것 같아서, 요즘 즐겨 보는 채널 몇 개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1. 클래식타벅스
나처럼 '말하기를 업으로 하지 않는 일반인의 발성'을 영상으로 보고 듣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 채널 영상들의 내레이션이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런 거부감을 뛰어넘을 정도로 영상이 다루는 내용 하나하나가 다 유익하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 아는 곡을 깊이 있게 들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처럼 음악적 지식이 얕은 꼬꼬마 리스너에게는 이렇게 옆에서 붙잡고 지식을 떠먹여 줄 사람이 꼭 필요했었다.
2. 네덜란드 바흐 소사이어티 Netherlands Bach Society
올해로 창단 100주년을 맞는 네덜란드의 음악 앙상블이다. 올해까지 'All of Bach'라는 제목 아래 바흐의 전곡을 녹음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 그저 "감사합니다!" 하면서 듣고 있다. 애초에 마태 수난곡을 연주하기 위해 결성됐기 때문에, 매년 성금요일마다 마태 수난곡을 연주하는 (나 같은 불신자에게는) 재미있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원전 악기를 쓴다는 점이 왠지 멋지고 좋다. 일례로 금관악기를 잘 살펴보면 밸브가 없다. 특히 하프시코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채널이다.
3. 에도아르도 람베르텡기 Edoardo Lambertenghi
알고리즘의 신묘한 힘으로 알게 된 채널이다. 밀라노에 거주하는 사운드 엔지니어라는 것 외에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죄송합니다!) 정말 담백하게 연주 영상만 올라온다. 여길 좋아하는 채널로 꼽은 이유는…….
4. 에반젤리나 마스카르디 Evangelina Mascardi
이 연주자를 알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멋있는 바로크 류트로 아름다운 연주를 한다. 나는 류트라고는 마비노기에 나오는 것밖에 몰랐는데 이렇게 매력적인 악기인 줄을 전에는 미처 몰랐다. 가장 좋아하는 연주 영상은 바이올린 파르티타를 류트로 편곡한 BWV1006a(그중에서도 프렐류드, 가보트와 론도)이고, 에도아르도 람베르텡기 채널에서 볼 수 있다. (어째 계속 바흐 얘기밖에 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