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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제를 또 줄이다

2022년 1월 14일

by 보현

너무 바쁜 나머지 도저히 병원 갈 짬을 낼 수가 없었다. 받은 약을 다 먹을 때까지 악착같이 버티다가 간신히 병원에 갔다. 오늘까지만 저녁 약을 먹고 내일부터는 되도록 먹지 않기로 했다.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하산하셔야죠"라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 약을 줄이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요즘은 늦어도 오후 10시 반에는 잠자리에 들려고 노력하고 오전 6시 반쯤 일어난다고 했더니, 이제는 저녁에 반 알 먹는 안정제를 먹지 않고 잠을 자도록 시도해 보자고 했다. 안정제에는 신체 대사를 활발하게 하는 역할도 있어 살이 붙을 수도 있다면서(몇 킬로그램이 쪘는지 듣더니 좀 놀라는 기색이었다. 저도 좀 당황스럽답니다…….) 안정제를 줄이면 살이 덜 찔 수도 있다고도 했다.


기복 없이 잘 지내는 것 같으니 약을 줄여도 되겠다는 판단에 대충 동의가 된다. 얼마 전에는 일을 하다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기분이 몹시 안 좋았었다. 그날 내가 하기로 한 일은 우울함에 푹 잠기는 것이 아니라, 밥을 많이 먹고 뜨거운 물에 몸을 푹 지진 다음에 잠자리에 일찍 기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다음날 점심에 사람을 만나 떡볶이와 튀김을 많이 먹고 아무렇게나 수다를 떨었더니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실은 누굴 만나서 한가롭게 떠들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어도 억지로 그렇게 했다. 그게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렵다. 자기연민에 휩싸이기 전에 세 끼 밥을 잘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일찍 일어나는 수면 패턴을 지키고,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 다행히 그 원칙이 이번에도 우울감을 걷어내는 데 유효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확신 비슷한 것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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