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 짠돌이의 50만 원 여행법'을 쓰고 있는 나는 제목과 어울리는 좀 무척 짠돌이다. 콧물 닦으려고 티슈를 한 장 뽑아도 반만 쓰고 반은 도로 꽂아놓는다. 문제는 이거다. 반으로 닦을 수 있으면 괜찮은데 꼭 부족해진다. 그럼 꽂아 놓았던 반을 다시 뽑는다. 진짜 문제는 이거다. 진작 한 장으로 닦았으면 됐을 것을 반씩 잘라 닦다 보니 다 안 닦인다. '그냥 쓸걸' 후회하며 새로 한 장 뽑는다. 휴지 반장 아끼려다 원래의 두 배를 쓰고 만다.
짠돌이의 생활방식은 이럴 때가 많다. 만 원 아끼려다 이 만원 쓰는 식. 이게 길러진 습관인가 타고난 본능인가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간의 행태를 보아 타고난 본능에 가깝지 않나 합리적 의심을 한다.
어제 학교에서 11시 30분에 대면 시험을 마치고 급하게 점심을 먹으러 갔다. 12시 20분에 실시간 동영상 수업이 있었다. 1분이라도 늦으면 교수님이 뭐라 뭐라 하기에 12시 10분에는 미리 컴퓨터 세팅까지 마쳐놔야 했다. 부랴부랴 점심을 먹고 있는데 오랜만에 시험 보러 학교 온 친구를 만났다. 밀린 근황의 10분의 1도 얘기 못했는데 시간이 다 되었다. 후다닥 일어나 근처 H 커피숍으로 갈 계획이었다. H카페는 차별화된 커피와 특이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쿠폰 10개 모으면 무료 음료를 주기도 했는데 어느새 11장까지 모으게 됐다. 작년 초겨울 쓰려고 했다가 그냥 저장해 놓았다. 그걸 오늘 쓸 참이었다. 숨차게 뛰어 H 카페으로 갔는데 어라? 위치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있어야 할 곳인 것 같은데 보이지 않았다. 이상했다. 주변 50미터에 걸쳐 모든 건물 입구가 공사 가림막으로 막혀 있었다. 왔던 길을 되짚어가다 보니 아뿔싸. 창문이 모두 뻥 뚫린 을씨년스러운 건물에서 H 카페 간판을 겨우 발견했다. 오 마이 갓. 내 쿠폰, 내 쿠포오오온.
처음엔 휴업일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눈을 비비고 건물 상태를 꼼꼼히 살펴보니 이번엔 폐업으로 보였다. 수업 시작까지 2분도 채 남지 않았다. 정신을 챙겨 다른 커피숍을 찾아 후다닥 뛰기 시작했다. 우리 학교 앞이 아니라 어디로 가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땀을 삐질 흘리며 내 쿠폰, 내 쿠포오온.
뭐든 하나로 굳어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스스로의 짠돌이 본능을 잘 알고 있는 편이라 한 번은 '있을 때 먹자'라는 모토를 만들었다. 다람쥐도 아닌데 자꾸만 저장하고 숨겨두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의식적으로 먹거나 사용하려고 했다. 특히 여행할 땐 마땅히 보관할 데도 없고 짐만 늘어서 뭐라도 생기면 먹어 치우는 편이 홀가분했다. 당장 쓸모없다 싶으면 과감하게 남에게 줘버렸다. 그리고 나면 희한하게 다시 다른 게 생겼다. 새롭고 더 나은 게 생길 때도 있었다. 나중을 위해 무언가를 구입해서 굳이 짊어지고 다니지 않아도 필요하다 싶을 땐 거짓말처럼 눈 앞에 나타났다. '있을 때 먹자'의 유용함을 길 위에서 반복해서 경험하다 보니 제2의 습관이 생긴 줄 알았다. 웬걸, 착각이었다. 컴포트 존(comfort zone)으로 다시 돌아오니 자꾸만 저장하고 싶고 왠지 아껴먹고 싶은 본능이 스멀스멀 살아나고 있다. 삼십 년 넘게 해온 습관은 쉬이 고쳐지지 않는 법이다.
파묻어 두지 말자, 복잡하게 멀리 생각하지 말고 지금 쓰고 지금 먹자. '산다는 건 그런거지, 한 치 앞도 모르잖소' H카페에서 날린 쿠폰 10장 때문에 속이 쓰렸지만 그래도 잊고 있던 습관을 되새김질 해 본다.
있을 때 먹자고 이짠돌 씨. 아끼면 뭐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