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불어봤습니다. 좀 오래됐는데 20대 중반, 학생 시절에 대금 동호회에 열심히 나갔더랬습니다.
한 3~4년 했지요 아마?
원래는 대금은 생각도 없었습니다. 저는 배낭에 넣어 다닐 만한 단소나 배울까 했습니다. 여행 중에 악기 하나 다룰 줄 알면 현지인의 주목도 끌고 덜 심심하고 겸사겸사 좋을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저의 지기(知己)가 함께 대금을 배우자고 했습니다. 단소도 배울 수 있으니 같이 가보자고 하더라고요. 한창 '다음 카페'가 인기 끌던 시절이라 온라인에서 꽤 유명한 대금 동호회의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첫 발을 딛을 때까지만 해도 제가 생각보다 오래 대금을 잡고 있을 거라 예상 못 했습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나오는 그 유명한 만파식적이 대금이었을 거라더군요. 대금 특히 정악대금 부는 걸 한 번이라도 구경한 적 있다면 짐작하셨을 겁니다. 참으로 고통스러운 악기라는 걸요. 일단 소리 내기가 어렵습니다. 단소는 피리처럼 앞으로 해서 불지만 대금은 이름만큼이나 큰 악기라 옆으로 돌려서 불어야 합니다. 입술이 취구(吹口)에 딱 들어맞지 않으면 언감생심 소리의 소자도 안 납니다. 그저 바람만 지나가지요. 연주 내내 고개를 돌리고 앉아 있어야 하니 목에 쥐가 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공(指孔)과 지공 사이가 어찌나 먼지. 소리 안 나는 건 그렇다손 쳐도 악기 구멍에 손가락이 안 닿는데 이거 어찌해야 되나요. 시간이 날 때마다 다리 찢듯 손가락을 찢어야 합니다. 어깨가 결리고 손이 저려도 참아야 하는 수양 같은 악기가 바로 대금입니다. 저같이 인내심 없는 이가 관둬도 열 번은 관뒀을 텐데 대금을 놓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매주 수요일이면 양재역 문화센터 한편에서 대금 동호회 모임이 열렸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대금 명인 분을 초빙해 직접 지도를 받았습니다. 단소장(단소제작장인)인 무형문화재 보유자님도 회원이었습니다. 거문고 연주자님도 계시고 피아노 선생님, 천문학 교수님, 키이스트 박사님, 중소기업 사장님, 꽃집 사장님, 은행원, 학생도 다 회원입니다. 나이, 성별, 직업이 그야말로 다양한 분들이 대금이 좋아서 대금을 불려고 삼삼오오 모였습니다. 동호회 모임답게 호칭은 카페 닉네임으로 불렸습니다. '대소리님 오셨어요? 가람님 늦으시네~ 아이고 반갑습니다 떠이어님, 소자님, 풀이님, 두리님, 자연의소리님, 걸음님, 지구별님' 처음엔 이름 듣고 쿡쿡 웃었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이웃 분들 같은데 대금만 잡으면 달라집니다. 두 시간 내내 지치지도 않고 대금을 붑니다. 매주 매주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걸 지켜보니 다들 집에서 얼마나 연습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저는 친구 옆에 앉아 대충 두 시간 적당히 소리 내는 척 립싱크를 했습니다. 어느새 끝날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끝나도 끝난 게 아닙니다. 아직 맥주집 뒤풀이가 남았거든요.
저와 지기는 학생이라 회비가 면제였지만 안주는 무조건 저희 위주로 시켜주십니다. 비록 저는 술은 못했지만 치킨, 한치, 과일 먹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특히 골뱅이 소면이 맛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안주도 안주지만 선생님들 이야기를 귀동냥하는 건 더 재밌습니다. 그렇게 대금을 불고도 역시 또 대금 이야기입니다. 지난주에 순천 대나무밭에 청(淸) 채취하러 갔던 이야기, 새로 제작 주문해 놓은 쌍골죽 대금 이야기, 과외받는 대금 선생님 이야기, 청성곡(정약 대금 연주곡 중 하나)의 맛이 왜 안 사나 고민이야기 등등 처음부터 끝까지 대금 이야기입니다. 다들 어떻게 하면 대금을 더 잘 불까 온통 그 고민 뿐인 것 같습니다. 아 물론 저는 빼구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가 또 그렇게 재밌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들 웃기 바빴던 기억이 납니다. 대금 이야기만 해도 즐겁다는 걸 태어나서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매월 마지막 주말이 되면 치악산으로 1박 2일 대금 집중 수련인 ‘산공부’를 떠났습니다. 치악산 아래 별장을 가지고 계신 가람님께서 장소며 먹거리며 다 제공하셔서 가볍게 몸만 가면 되었습니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하나둘 모여들어 먼저 오면 먼저 온대로 나중 오면 나중 온대로 대금을 쥐고 자리를 잡습니다. 저녁 먹을 때까지 쉬지 않고 달립니다. 저녁을 먹고는 또 대금을 잡습니다. 자정이 넘어서면 그제야 '자 마지막으로 상련산 갑니다'하면 끝인가 싶은데 아직 30분 더 남았습니다. 저야 좀이 쑤시고 손가락에 쥐도 나고 목도 아프고 팔도 저리고 이중고 삼중고에 시달리며 그만 하고 싶은 마음은 저녁 먹을 때부터 있었지만 차마 대금을 내려놓지는 못 했습니다. 왜 분위기라는 게 있잖습니까? 대금을 향한 열정이 저렇게 타오르는데 소리가 나든 안 나든 그저 옆에서 대금을 붙잡고 있을 수밖에요.
다들 원 없이 불었다 싶을 때 비로소 뒤풀이가 시작됩니다. 날씨가 마땅하면 마당에다 장작불도 피우고 고기도 굽고 가람님이 아껴 둔 양주도 등장합니다. 그런 밤엔 또 별이 그렇게 쏟아집니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아침이 되면 녹차 향기가 은은하게 퍼집니다. 누가 봐도 녹차를 잘 우려내게 생긴, 긴 머리를 단정히 묶고 황토색 생활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솔바람님이 녹차 담당입니다. 혹시 외모로 오해하실까, 솔바람님은 도자기를 굽는 남자분이십니다. 녹차 해장과 함께 치악산 아침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딜 가시려고요? 댓츠노노. 대금 불어야지요. 집에 갈 때까지 다시 대금 수련 시작입니다.
저는 그만 이 재미를 알아 버려서 잘 불지도 못하는 대금을 3년 넘게 붙잡고 차마 놓지를 못했습니다.
대금 동호회 활동의 백미는 국립국악원 무대 연주였습니다. 아마추어 동호인들이었지만 다들 실력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렇게 대금 이야기만 하고 대금을 붙들고 안 놓는데 실력이 없는 게 더 이상하겠지요. 몇 년을 갈고닦은 실력으로 국립국악원 무대에 서기로 기획했습니다. 저야 교실 앞에 나가 장기 자랑할 실력도 안 되었지만 마음씨 좋고 실력은 더 좋은 선생님들께 묻어서 합주 무대에 올랐습니다. 것도 그 큰 무대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섰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영광이라기보단 아찔합니다. 그 실력으로 어찌 그런 무모한...
지금이야 대금을 어디 두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재미있고 좋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선생님들과 연락을 안 한지도 십 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대금 이야기를 꺼내다 보니 다들 잘 지내시는지 어쩌신지 궁금해집니다.
뭐 특별할 게 있었나 싶었던 20대 중반, 대금과 함께 했단 걸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학교나 전공에 마음을 못 붙이고 방황하던 그 시절, 그래도 대금이 있어서 위로가 되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갑갑한 날은 대금을 들고 캠퍼스 뒤 운동장으로 갔습니다. 운동장 계단에 앉아 손가락을 있는 힘껏 찢어가며 대금을 불어봤습니다. 마음속에 있던 상실감, 좌절감, 분노가 소리에 실려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 한동안 지낼만해 지지요.
제 이십대 인생 한 토막을 장식해 줬던 대금을 그동안 잊고 지냈네요. 갑자기 대금을 불어 보고 싶습니다. 소리는 나려나 모르겄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