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물음에 실마리를 찾았으니 이제 나도 어른이 될 수 있다!
조그마한 꼬마 시절부터 어른이란 무엇일까 턱을 괴고 고민했다. 어른이란 뭐지, 나도 크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어른은 절대 넘어지지 않아
초딩 시절 나는 무던히도 넘어졌다. 저렇게 넘어질 수 있을까 싶게 넘어졌다.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느라 하루 해가 짧았다. 동네에서 학교에서 흙바닥 위를 뒹굴며 놀이에 열중하다 보면 무릎이 깨지기 일쑤였다. 웬만한 상처는 없어졌는데 지금도 훈장처럼 왼쪽, 오른쪽 양 무릎에 사이좋게 큰 흉터가 각각 남아 있다. 한 번은 학교 화단 돌무더기에 서 있는데 친구가 뒤에서 미는 바람에 그대로 앞으로 처박혔다. "큰일 날 뻔했네, 하마터면 뼈를 다칠 뻔했어" 양호 선생님의 한 마디에 가슴이 철렁했다. 그게 흉터가 되어 오른쪽 무릎에 떡하니 남아있다. 지금도 나를 다치게 한 친구의 이름 석자가 생생하다. 이미주. 학교 대표로 육상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었다. 1등으로 달리다가 결승선을 코앞에 두고 그만 스텝이 꼬여 버렸다. 전속력으로 철퍼덕하고 고꾸라졌다. 그때의 쓰라린 기억은 왼쪽 무릎에 지름 2.5cm의 큰 흉으로 남아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넘어지고 자빠지던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여태껏 어린아이들이 넘어지는 것만 봤지 어른이 넘어지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아하 어른은 넘어지지 않는구나' 나도 얼른 어른이 되어 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등굣길 책가방을 매고 동네 어귀를 나서던 길이었다. 출근길이던 친척 미숙이 언니가 무릎을 절며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는 걸 발견했다. 언니는 버스 시간이 임박해서 뜀박질하다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청바지 무릎이 찢어져서 출근도 접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걸 본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어른이 넘어지다니, 어른인 줄만 알았던 미숙이 언니는 어른이 아니었던 걸까 아니면 어른도 넘어질 수 있는 걸까.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어른이 넘어질 수 있지? 대체 뭐가 어른이지? 질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결혼을 하다니 참어른이구만
그렇다면 무엇이 어른일까. 스무살이 되면서 법적으로 성인이 되었지만 스스로를 어른으로 인정할 순 없었다. 정신은 아직 십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십 대 초반 어느 날, 어른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해답을 얻을 기회가 있었다.
온갖 시행착오란 시행착오는 다 저지른 채 첫 연애가 끝났을 때였다. 나는 후회와 자책과 그외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안녕' '그래 안녕' 하면 끝날 줄 알았던 이별이었는데 후폭풍이 닥쳐왔다. 이별은 마치 내 세상에 살던 한 존재가 영원히 사라진 것과 같았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처럼 한 번도 누군가를 영영 잃어본 경험이 없던 내게 이별은 생경한 충격이었다. 대체 뭐가 잘못되었을까, 이 감정은 무엇일까, 나는 학교 도서관에 있던 연애 관련 책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 전공공부도 이렇게 해 본적 없을 정도로 유래없는 학구적이고 탐구하는 자세로 차근차근 글로 연애를 배워 나갔다. 석 달 뒤 한쪽 벽면을 채우던 연애심리상담책을 모조로 섭렵했을 때 비로소 나는 어떤 심정이고 또 상대는 어떤 심정이었을지 대략 깨달음이 왔다. 연애 중 저질렀던 나의 실수가 새록새록 생각났고 상대에 대한 미안함이 커진 만큼 혹시라도 실연의 상대를 마주칠까 봐 겁이 났다. 나를 엄청 싫어하고 미워하고 있을 것 같았다. 가급적 눈에 띄지 않게 캠퍼스를 다니는 게 과제였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연애 같았다. 이건 내 감정만 어떻게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상대의 심경과 반응을 지속적으로 살피고 그만큼 나도 나를 잘 알아서 서로 맞추어 가야 하는 대장정길이었다. 다른 사람 마음만큼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에 있을까.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연애가 틀림없었다.
그 무렵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할 일이 생겼다. 의기소침한 나와 달리 세상 밝게 웃고 있는 신랑 신부를 보며 무릎을 쳤다. "그래 결혼하는 사람들이 진짜 어른이야." 그 어려운 연애에 성공하다니 그래서 결혼까지 하다니. 이건 언빌리버블 그 자체로 존경받아 마땅했다. 한 동안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내가 다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경건하고 대단한 새로운 참어른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복했다. 참 위대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좀 더 커서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적당한 때가 되어서 적당한 사람을 만나 적당히 결혼한다는 사실을. 결혼에 골인한다고 해서 모두가 치열한 연애를 한 것도 연애에 딱히 성공한 것도 아니었다. 결혼은 마음을 좀 더 굳세게 먹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거였다. 물론 한 번도 그 마음을 먹어본 적 없는 내게 결혼이란 언제나 남의 이야기였지만 그렇다고 경외시 할 만큼 결혼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결혼을 위한 결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아 결혼한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건 아니구나' 깨달았다.
진짜 어른은 부모가 되어 봐야지
시간이 지나고 나에게도 조카가 생겼다. 첫 째 조카 준이는 정말 너무너무 귀여웠다. 눈만 감아도 준이의 웃는 모습이 생각났다. 준이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해서 듣고 또 듣고 전화통을 붙잡고 놓을 줄 몰랐다.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애정을 느낀 존재였다. 그리고 조카가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해 어느덧 일곱이 되었다. 귀여움은 예전만 못했다. 대신 육아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 눈에 들어왔다. 곁에서 지켜본 육아는 전쟁이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키우며 몇 년간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기들이 기저귀를 몇 년씩이나 차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겨우 몇 달이면 사람 구실 할 줄 알았는데 사람 하나 만드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이야. 일하랴 아이들 돌보랴 부모의 삶이란 저게 로봇이지 사람일까 싶을 정도로 고된 하루하루였다. 그저 초인적 인내로 견뎌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부모가 되면 어른이 되는구나. 자녀를 키우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진짜 어른이었다. 새삼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존경심이 일었다.
그런데 부모가 되었다고 해서 인격적으로 성숙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차츰차츰 깨닫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의 끊임없이 투덜대고 변명하는 습관은 부모가 되기 전이나 후나 딱히 변함이 없었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더 강화된 것도 같았다. 자기 자식만 이뻐하고 감싸느라 주변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부모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그런 집 자식들은 커 갈수록 그런 지 부모를 똑 닮아가는 게 보였다. 부모가 된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건 아니었다. 차라리 부모에게 자기 핏줄이 귀한 건 본능이고 그 본능에 충실하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부모 되기와 어른되기는 별개의 문제였다.
진짜 어른이란 무엇인지 실마리를 잡았다
마침내 한참 잊고 있던 어른이란 무엇일까란 화두의 실마리를 잡은 건 불과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어느 날 양치질을 하며 거울을 물끄러미 보던 와중에 문득 깨달음이 왔다. 그래 이런 게 어른이 된다는 거야. 그리고 일 년이 지나도록 이 해답에 대한 반박 거리를 딱히 찾지 못했다.
어른이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란 바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들은 가정이나 사회에서의 위치 혹은 직위, 돈, 학벌, 외모 등으로 자신이 대접받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심사가 뒤틀어져서 잘 참지 못한다. 나는 세상에 어떤 것도 당연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신을 믿는다고 해서 당연히 축복 받을 수 없다. 당신이 유명한 저명한 사람이라고 해서 존경을 거저 얻을 순 없다. 당신이 손님이라고 해서 왕 같은 대접을 당연히 받을 줄 안다면 착각이다. 부모라고 해서 자식의 존경을 당연히 얻는 건 아니다. 자식이 결혼한다고 해서 부모가 집을 해주거나 혼수를 해 주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다. 친구라고 해서 이해해주는 게 당연하지 않다. 세상에 당연한 건 그 어디에도 없다. 만약 그렇게 해 준다면 그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무언가를 바라기 전에 당신도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해야 하는게 인지상정이다.
만약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헌신적이고 성실하고 베푸는 누군가를 만났다면 그걸 알아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어른이다.
진짜 어른을 구별하는 법은 의외로 쉽고 간단하다. 그 사람에게 진심으로 대해줘 보면 안다. 진짜 어른은 그런 사람을 알아보고 감사해하며 더 잘해주고 인간적으로 대한다. 호의가 권리인 줄 아는 사람, 첫눈에 나보다 약하거나 없어 보이는 사람을 얕보고 무시하고 짓밟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나이가 백 살이건 이백 살이건, 직위가 높던 낮던, 돈이 많던 없던 어른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걸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고 그 당연하지 않은 것들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 다른 사람의 노고와 희생을 헤아리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일단 그런 사람만이 어른이라고 나는 인정한다. 그토록 오래 찾아 헤매던 어른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으니 가정이 참인지 아닌지 계속 검증할 일만 남았다. 또 어른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나도 어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넘어져서 무릎이 깨져도 애써 결혼하지 않아도 그리고 부모가 아니어도 어른이 되는 데는 하등 문제가 없다. 이제 나도 어엿한 어른으로 거듭나고 그리고 앞으로도 주욱 어른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