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어스름해지니까 궁둥이가 들썩들썩합니다. 대학로를 지나 자주 가던 야채가게를 목적지로 정하고 자전거를 잡았습니다. 앞바퀴, 뒷바퀴 바람은 충분하고 브레이크 상태도 괜찮고 출발입니다. 페달링이 좀 뻑뻑한 게 조만간 체인에 기름칠을 한 번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전거를 이용해서인지 저는 자전거 타는 게 참 좋습니다. 바람을 가르는 것도 좋고 다리 운동이 되는 것도 좋고 남들 걸을 때 그 옆을 슁하고 지나가는 것도 좋습니다. 내일부터 장맛비가 다시 시작된다더니 구름이 많이 끼어 있네요.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갈까 하다가 삼청동 길을 지나기로 했습니다. 오르막길에 갓길이 없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지름길이거든요. 뒤에서 차가 오나 안 오나 신경 쓰며 힘차게 오르막길에 페달을 밟았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니 또 내리막 있잖겠습니까. 예전에 삼청동에서 4년간 산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때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새 삶 훈련소라는 곳을 싸이월드에다 포스팅했던 기억이 불현듯 나더라구요, 지금 막 지나친 건지 이제는 없어진건지 아무튼 그때 친구가 답글로 여기 이상한 곳 아니냐고 물었었고요. 진짜 이상한 곳이었나 어쨌나 회상하던 찰나 갑자기 자전거가 비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도로 가운데 속도방지턱 겸 깔아놓은 돌무더기 길이 있더라구요. 여기에 바퀴가 끼었던가 봅니다. 자전거가 흔들리니 본능적으로 앞바퀴 뒷바퀴 브레이크를 동시에 잡았습니다. 앗차하는건 그야말로 찰나더라고요. 길 옆 벤치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내지른 '아이고' 소리 장단에 맞춰 그만 옆으로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자전거는 반이 접혔구요. 아픈 건 둘째치고 2차 위험이 있으니 재빨리 도로에서 벗어나야 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다행히 뒤따라 오던 자동차 한 대가 멈춰 섰더라고요. 제가 비틀거리는 걸 감지하고 정지했던 것 같습니다. 운전자의 기민한 대응에 그 와중에도 감사함과 감탄의 마음이 들더라구요. 얼른 일어나 다리를 절며 자전거를 들어 길 옆으로 옮겼습니다. 특히 왼쪽 무릎이 깊이 파였더라고요. 다행히 뼈를 다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하필 이런 때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있어 팔꿈치, 무릎이 골고루 다쳤습니다. 무릎에 가해진 충격을 좀 덜고자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주변 노상카페에 사람들이 꽤 많이 앉아 있네요. 제가 다이빙해서 바닥에 처박히는 걸 봤을 텐데 다들 못 본 척 시치미를 뚝 떼고 있더라고요. 심지어 소리 장단을 넣어주던 벤치 아저씨도 고개를 돌리고 묵묵히 담배만 피웁디다. 솔직히 처음엔 좀 서운했습니다. 괜찮냐고 안위를 물어봐 줄법도 한데 말이죠.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제가 민망해할 까 봐 모른 척하는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한국사람들이 참 이렇게 속이 깊습니다.
다행히 자전거도 이상이 없어 보였습니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올라오던 오르막 길을 되짚어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자전거를 타면서 이렇게 넘어졌던 건 두 번밖에 없었습니다. 첫 번째는 독일에서 자전거 여행을 할 때였는데요, 해가 지고 깜깜한데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있었거든요. 공사한다고 모래를 깔아놓은 걸 모르고 속도를 냈다가 바퀴가 빠졌습니다. 대차게 자빠졌었지요. 바지 무릎이 찢어지고 생채기가 꽤 크게 났었습니다. 여행 때라 그러려니 잊고 있었나 봅니다. 그러니까 일상에서 자전거를 타며 사고 아닌 사고가 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비틀거리던 그 짧은 순간에 엄청 당황했습니다. '어? 나 이런 식으로 넘어진 적이 없는데' 하자마자 곧바로 나가떨어지더만요.
상처에 무리가 가지 않게 조심조심 페달을 밟으며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아 내가 그동안 자전거를 타며 오만한 마음이 있었구나. 사고는 한순간이더라고요. 다행히 이만큼 다친 것도 운이 좋았다고 밖에요. 앞으로 자전거를 탈 때 처음 타는 것처럼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까 예전 삼청동 살던 시절을 떠올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다치고 나니 제일 먼저 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너무 과거에 얽매여 있구나. 거리를 지나며 한 생각이라곤 자꾸 과거의 추억, 회상이었습니다.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으니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위급 시 판단도 느릴 수밖에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의식적으로라도 현재에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뼈는 안 다친 것 같아 병원은 생략하고 집에서 상처를 처치했습니다. 옆구리, 허벅지, 팔뚝, 손가락 마디 아까는 몰랐던 새로운 상처부위를 자꾸 발견되네요. 몸이 놀라서 엔돌핀이 분비됐겠죠, 아픈 줄도 몰랐습니다. 소독을 마치고 연고도 바르고 좀 쉬었더니 몸이 안정되더라구요. 더불어 통증도 본격적으로 시작되네요. 선천 면역계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백혈구 시체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출혈도 계속되네요. 1차 방어막인 표피세포가 뚫렸으니 지금 면역계가 사이렌을 울리고 난리 법석일 겁니다. 호중구나 대식세포가 손상된 조직에 모여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를 공격하며 사이토카인을 뿜뿜 하고 있을 겁니다. 홍반, 부종, 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수지상 세포도 뛰어들어 병원균의 시체를 재가공해서 표면에 제시하겠지요. 그러면 그걸 인식한 T세포, B세포도 뒤늦게 전쟁이 뛰어들 겁니다. 저는 그저 이 친구들이 잘 싸울 수 있도록 충분한 잠을 자고 면역계 활동에 도움되는 보조제를 좀 섭취하려고 합니다. 내일 아침 일어나면 승리의 낭보가 전해져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들 자전거 타실 때 무탈하시길 안전운행하시기를 또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