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을 나왔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말씀으로는 근처에 성벽이 있다는데 자세한 위치를 묻는 걸 깜빡했다. 대충 아무 방향으로 가볼까 하다가 지도를 펼쳤다. 주변에 성벽이 있을 만한 곳이 어디쯤이려나...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도를 확대하다 축소하다가 어랏 경주읍성? 여기네 여기.
밖으로 나오니 윽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오늘따라 귀때기가 시렸다. 무겁다고 패딩점퍼 모자를 떼 놓고 나왔는데 다시 붙여야겠다 싶을 정도로 아침 공기가 몹시 차가웠다. 하루하루 아침 기온이 떨어지고 있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었다.
7시 경주 도심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장애물 없는 휑한 거리를 재빠르게 이동하며 5분쯤 걸었으려나. 돌 흙벽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오호라 잘 찾아왔구먼.
경주는 이게 참 매력적이다. 사방팔방을 빙 둘러봐도 다들 고만고만한 높이의 건물들 뿐이다. 게다가 도시는 평지 위에 건설되어 있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길을 걷다가 문득 고대 유적을 마주치는 뜻하지 않은 기쁨이 있다.
성벽 위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찬찬히 아침 공기를 만끽했다.
세계 어느 도시를 여행하건 내가 빠뜨리지 않는 건 하루 종일 도시를 걷는 일이다. 하루든 이틀이든 시간이 나는 대로 나는 끊임없이 걸어본다. 비록 날씨 영향을 상당히 받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오관의 감각을 활짝 열고 사람을 관찰하고 건물을 구경하다 보면 그 도시만이 가지는 분위기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요즘같이 미디어가 발달해 있는 때, 왜 굳이 여행을 해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질 때가 많았다. 정보 찾기를 게을리하는 내 입장에서 각종 여행 프로그램들은 직접 가서 볼 수 있는 것 이상의 간접체험을 제공한다. 비싼 장비와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소개하는 유명 대성당, 왕궁, 미술관, 박물관등을 시청하다 보면 나는 대체 왜 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기억에도 잘 남지 않는 저곳을 다녀왔나 의문이 든다. 로컬 맛집을 귀신같이 찾아내서 소개하는 방송을 보고 있으면 나는 저것도 모르고 뭐 했나 반성도 하게 된다. 그런데 정보 과잉일 만큼 쏟아지는 어떤 여행 프로그램도 결코 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내가 온몸으로 느끼는 도시의 분위기이다. 사전조사를 거의 하지 않고 마냥 돌아다니기만 하는 여행법인지라 게으른 나에게 딱 맞을뿐더러 내 감각을 깨우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도 도시 하나하나를 떠올릴 때마다 그곳에서 들렀던 박물관, 미술관, 식당보다 내가 느꼈던 도시의 분위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나는 이곳 경주에서도 여전히 하염없이 걸어 다니며 동네 분위기를 흠뻑 느끼는 시간을 갖는다. 특히 인적이 드문 이른 아침 나 혼자 고요히 산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는 유적지나 전통문화 등 옛 흔적을 만날 때면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는다. 아마 전통 시골 동네에서 나고 자라며 체득된 것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오늘도 따스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경주읍성의 고요하고 정겨운 분위기를 만끽하는 즐거움이, 아침부터 느끼는 그런 즐거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