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이틀 째 아침이 밝아 왔다.
집에서 잘 때는 좀처럼 중간에 깨는 일이 없는데 여기서는 이틀 밤 내내 밤새 몇 번이고 뒤척이며 깨고 있다.
첫 째날에는 버스를 타고 오느라 점심을 건너뛰었더니 저녁에 너무 과식을 하게 되었다. 잘 시간이 되도록 좀체 소화가 되지 않았고 그 눔 내려가게 한다고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잠들었다. 방도 서늘해서인지 몸도 으슬으슬한 게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전기장판을 켜 놓았더니 머리맡에서 전기 소리가 위이잉 하고 들려서 신경에 몹시 거슬렸다. 공기가 건조했던지 목이 약간 칼칼한 게 혹여나 감기라도 걸릴까 봐 긴장했다.
어젯밤에는 반대로 너무 더워서 자꾸만 깼다. 이번에도 전기장판이 거슬렸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봤더니 눈에 핏줄이 서 있었다.
역시 잠을 잘 자려면 익숙한 내 이불, 내 방바닥, 내 방 공기만 한 게 없다는 걸 새삼 느꼈다.
얼른 가볍게 씻고 점퍼를 차려 입고 숙소를 나섰다. 아침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하려던 참이었다. 가는 길에 식자재마트에도 들러서 내가 살만한 게 뭐가 있나, 요리조리 구경했다. 나는 이런 먹거리 장보는 게 그렇게 좋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건 내가 제일 궁금한 건 현지 마트 사정이었다. 현지인들은 뭘 먹고 사는지, 물가는 어떤지 가늠할 수 있을뿐더러 내 식탐을 채울 장소이기도 했다.
경주는 도심 곳곳에 유적지가 널려 있다. 숙소에서 5분쯤 걸어가니 바로 거대한 능들이 나타났다. 능 안에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들도 있었고 조그마한 밭에는 속이 꽉 찬 실한 배추들도 보였다. 공원을 자기 집 안뜰처럼 쓸 수 있는 게 신기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 보니 몸과 정신이 모두 깨어나고 있었다.
산책한 지 어느덧 한 시간이 넘어섰고 배가 고파왔다. 숙소에 가서 간단히 토스트를 먹는 것보다 한식으로 든든하게 먹고 싶었다. 근처 팔우정 해장국 거리를 찾아갔다. 해장국 거리라고 해서 양 옆으로 가게들이 죽 늘어선 거창한 곳을 기대했는데 영업 중인 가게는 고작 7 곳에 불과했다. 입구에서 끝까지 1분이 뭐냐, 30초도 안 걸릴 거리였다. 한 때는 포항에서도 올만큼 성업했다는데, 사람들의 입맛이 바뀐 데다 근래는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서 여로모로 장사가 어렵다고 한다.
해장국 거리를 한 바퀴 죽 지나가는데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가 나와서 호객행위를 하셨다. 푸근한 인상에 정겨운 사투리가 왠지 익숙했다. 멋쩍게 목례를 하고 지나가면서 어디 집으로 들어갈까 갈등했다. 아무래도 좀 깨끗하고 넓은 곳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호객 행위하던 할머니가 마음에 걸렸다. 나는 길을 되짚어 돌아왔다. 역시나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다시 호객을 했다. 할머니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니 국밥 경력자의 내공이 느껴졌다. 나는 자연스레 할머니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소담스러웠고 메뉴는 메밀 해장국, 선짓국, 소고기국밥으로 단출했다. 선짓국이야 언제나 나의 원픽이지만 왠지 경주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메밀묵이 들어간 해장국을 먹어보고 싶었다. 할머니는 난로를 내쪽으로 돌려놓고 음식을 장만하러 한쪽 구석에 위치한 주방으로 가셨다. 짝이 맞지 않는 손때가 가득 묻는 의자, 탁자가 오와 열을 맞춰 있었다. 그럼 그렇지, 내부만 천천히 둘러봐도 전통이 살아 있는 맛집이 틀림없어 보였다. 상은 5분도 지나지 않아 뚝딱 차려 나왔다. 상차림을 보자마자 나는 내가 했던 모든 생각들이 한낱 상상에 불과했으며 편견에 지나지 않았음을 눈치챘다. 국물을 한 숟갈 떠먹어보고 나서는 확신을 가졌다. 잘못 들어왔구나.
해물로 육수를 냈다는 국물은 멀겋고, 건더기는 부실하게 둥둥 떠다녔다. 밥은 어제 아니 그저께 해둔 게 틀림없는 게 푸석푸석하고 누렇게 떠 있는데다 심지어 탄 밥까지 섞여 있었다. 해장국은 비주얼만큼이나 괴상망측한 맛이었다. 혀의 미뢰 깊숙이 파고드는 아스파탐같은 불쾌한 단맛과 난데없는 신맛과 염화나트륨 결정의 순수한 짠맛이 각자 따로 놀다가 어우러져 이마가 절로 찡그려지는, 숟가락을 당장 내려놓고 싶은 맛이 났다. 국에 들어 있는 콩나물을 씹으니 '아 이건 쫌' 한탄이 절로 나왔다. 얼어있던 콩나물을 삶은 것처럼 타이어 씹듯이 질긴 식감의 콩나물은 난생 처음이었다. 콩나물을 워낙 좋아해서 박스로 사다 놓고 먹는 콩나물 마니아인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반찬 중에서 단백질 공급원이라곤 멸치 볶음 하나였는데 이 녀석도 좀 전까지 냉동실에 있었던지 얼음이 같이 씹히는 괴상한 식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깍두기에 서리 내린 것 마냥 살얼음이 보이는 게 여기는 음식을 죄다 냉동시켜두는 것 같았다.
밥을 먹으면서 근래 이렇게 실망하고 이렇게 좌절한 적이 있었던가. 음식을 먹으며, 그것도 내가 선호하는 메뉴인 해장국을 먹으며 이렇게 슬프고 울적하고 이 기분과 이 사실을 사장님께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한 건 오랜만이었다. 사람이 너무 없다고 내 고향 사투리와 비스무리한 정겨운 사투리로 넋두리 하는 사장님의 얼굴을 마주하니 차마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로마를 헤맬 때 동네 숨은 고수가 하는 곳으로 추정되는 작은 식당을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던 적이 있었다. 드디어 본토의 파스타를 맛볼 타이밍이라며 기대했는데 웬걸, 부실한 소스와 덜 익은 면발을 씹으며 각종 후회와 난감함을 온몸으로 느끼던 게 아마도 잘못된 식당 선정의 마지막 기억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이 다음이다.
웬만해서는 음식을 남기지 못 하는 나의 올바르고 강박적인 습관 탓에 해장국에 밥을 말아 한 술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어 치웠다. 생각할 수록 나의 먹성은 좀 대단한 구석이 있긴 있다. 기괴하던 첫맛도 자꾸 먹다 보니 혀도 대충 적응을 했고, 어차피 위장으로 들어가니 배 부른건 매 일반이고 그랬다.
어제 근처 추천 한식집을 찾았다가 마침 일주일에 한 번 있다는 휴무에 걸리고 말았다. 결국 주린 배를 부여잡고 숙소로 돌아와 인스턴트 면을 허겁지겁 먹어야 했던 게 내심 억울했었다. 경주에 내려와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를 한 건 아침 해장국이 처음이었는데 그런데 넌 나에게 실망감을 줬어. 실망이 너무 컸던지, 경주에서 다시 무언가를 사 먹는게 꺼려질 정도다. 혀는 아직도 해장국의 첫 맛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맛집 찾는데 정말로 소질이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걸로 편견을 만드는 행위를 당장 멈추라고 스스로에게 강력하게 권하고 싶었다.
그 유명한 경주 해장국 거리의 맛이 이럴 리가 없다고, 다른 집을 한 번 찾아가 보는 건 어떻겠냐는 생각도 안 한건 아니었지만 내 돈으로 그런 모험을 두 번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겉모습에 속지 말 것, 여태껏 맛본 해장국 중 가장 맛없는 해장국을 경주에서 먹고 난 뒤 숙소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내 발걸음은 유난히 쓸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