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마음에 쓰레기 +1

by 김커선

오늘 아침엔 산책을 좀 서둘러봤습니다. 여름엔 해가 뜨는 새벽 4시 반에도 산책 나가고 했는데 지금은 날이 어스름이 밝은 7시는 돼야 방바닥을 기어 나옵니다. 왜 이렇게 잠이 많아졌을까요, 스스로를 돌아보며 오늘은 지난 여름처럼 일찍 일어났습니다. 일 년 중 해가 가장 짧다는 동지, 내일부터는 다시 해가 길어지겠지요.


아직 주변이 어둑어둑합니다. 깜빡 잊고 마스크를 안 쓰고 나왔는데 덕분에 눈에 띄지 않습니다. 게다가 월요일이라 그런지 산책길에 사람도 드문드문합니다. 확실히 지난주에 비하면 아침 공기가 많이 누그러졌네요. 쨍한 공기 맛이 없습니다.


산책길로 접어드는 찰나, 누군가 길가 턱에 버려놓고 간 커피잔이 눈에 띄었습니다. 보아하니 이번에 새로 생긴 인왕산 초소 책방에서 테이크 아웃해 온 모양입니다. 안 그래도 어제 인왕산 자락길이 사람들로 평소보다 북적북적거려 놀랐더랬지요. 코로나로 방역이 강화되자 휴일엔 사람들이 산으로 들로 더 나오는 것 같습니다.

몇 걸음 못 가서 이번엔 아스팔트 길바닥에 옥수수수염차 병, 삼각김밥 봉지, 과자봉지가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위치를 보아하니 불법 주차해 둔 차량 문을 열고 지 몸은 집어넣고 쓰레기는 밖으로 내놓고 간 것 같습니다.

이제 숲길이 나왔습니다. 어랏 이건 또 뭐지요. 벤치 위에 누군가 커피잔을 놓고 갔습니다. 이번엔 스타벅스네요. 인근 2km 반경에 스타벅스가 없는데 이건 또 어디쯤에서 애써 사 온 걸까요.


저는 그렇습니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합니다. 희한하게 쓰레기를 저렇게 함부로 두고 가는 사람을 아직까지 직접 목격한 적이 없습니다. 언젠가 한 번 마주치게 되면 진지하게 인터뷰를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이거 왜 두고 가시는 건가요? 혹시 환경미화원 분들 일거리가 없을까 봐 배려하는 건가요? 아니면 나 이렇게 자연 속에서 커피 마실 줄 아는 교양 있는 사람이야 증명하고 싶은 건가요? 아니 진짜 궁금한 게 이렇게 버려두고 가면 누가 치울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주변 환경과 이 쓰레기가 진정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형편없는 미학을 가진 건 아니시겠죠 설마? 아아 알았다, 쓰레기를 버릴 때 묘한 쾌감이 있으신가 보네, 난 제도에 얽매이지 않겠어 난 나의 길을 갈 거야 라고 말이죠.'

그러고 보니 저도 마지막과 비슷한 경우가 있었네요. 지금은 아니겠지만 2000년대 초반 중국 여행을 할 때 깜짝 놀랐던 한 가지 있었는데, 사람들이 기차 바닥에다 쓰레기를 아무렇지 않게 투기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해바라기씨는 그냥 바닥에 뱉고 컵라면 용기도 빵 봉지도 그냥 바닥에 버려댔습니다. 그러면 승무원이 나타나 빗자루로 한 번에 싹 쓸어가더라고요. 저도 현지인을 흉내 내며 쓰레기를 바닥에 막 던져댔는데 죄책감과 동시에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더라고요. 이거 이런 감정의 해소 때문에 쓰레기를 버리는 건가요?


얼마 전 산책길이었습니다. 맞은편에서 중고생쯤으로 보이는 남학생 둘이 걸어오고 있더라고요. 한 남학생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떨어졌습니다. 쿵! 봤더니 삼다수 500ml 물병에 약간의 물이 찰랑대고 있었습니다. 순간 남학생이 멈칫하는가 싶더니 그냥 지나쳐 버리더라고요.

"저기요!" 남학생들이 뒤돌아봅니다. "저기 물병 떨어졌습니다."

남학생 하나가 황급히 되돌아오더니 "죄송합니다"하며 물병을 주워서 돌아갔습니다.

고맙다가 아니라 죄송하다고 반응한 걸 보면 떨어뜨린 줄 알면서도 일부러 안 주웠던 게 확실해 보였습니다.


유라시아 대륙 여행을 하는 동안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디가 선진국이고 어디가 후진국일까, 한국 정도면 선진국이라 불러도 될까, 대체 그걸 가르는 기준은 뭘까 하는 거였습니다. 단순히 경제력이라고 답하기엔 탐탁지 않은 부분들이 많았거든요. 거 왜 사람들의 시민의식도 있고 전통, 역사도 있고 정치 수준도 있고 등등 기준이 많잖겠습니까.

정말 많은 나라, 많은 도시를 돌아다니는 동안 저는 어느새 이 두 가지를 눈여겨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횡단보도와 쓰레기.


횡단보도 앞에서 운전자들이 보행자를 기다려 주느냐 아니냐를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를 어떤 식으로 대하는지 짐작 되었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구성원을 존중할 줄 아느냐 배려할 줄 아느냐 하는 의식이 무의식이 난무하는 교통공간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건 다른 편에서 이미 열을 좀 냈구요.

또 다른 하나는 쓰레기입니다. 튀니지는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일 년 내내 화창한 날씨와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 풍부한 역사 유적지, 아름다운 자연경관 그리고 교양 있는 사람들. 저는 이만하면 겉으로 보기에 선진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방에 가보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골목 곳곳에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었거든요. 숨쉬는게 꺼림칙할 만큼 풍화되어가는 플라스틱 봉지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먼지를 일으켜 댔습니다. 여름에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했을 땐 급기야 토하는 줄 알았습니다. 거리 곳곳에 쓰레기가 산을 이루고 고약한 악취를 마구 풍겨댔거든요. 이게 나란가, 이게 도신가 싶었습니다.

쓰레기를 처리하려면 정부의 행정력이 필요합니다. 골목 곳곳까지 깨끗하게 치우려면 수많은 인력과 비용이 투입되어야겠지요. 아무리 행정력이 있어도 사람들이 자꾸만 쓰레기를 버려대면 무용지물입니다. 더불어 시민 의식까지 엿볼 수 있습니다. '방구석은 너의 의식 상태를 보여준다'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지저분한 주변 환경에 신경 쓰지 않는 지경이라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이런 기준이라면 대한민국은 어떤 수준일까요. 아직 씁쓸하지요.


저는 쓰레기를 고이 살포시 두고 가 버리는 사람들에게 건의하고 싶습니다. 아마 다음부터 이 방법을 쓰신다면 당신의 쓰레기를 발견한 사람은 단박에 기분이 좋아지고(내 눈을 바라봐), 쓰레기를 버려주어 감사하다고 당신을 향해 넙죽 절이라도 올릴지 모릅니다. 아침에 막 급하게 생각해 냈지만 솔직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참으로 기가 찬 방법입니다. 신이여 정녕 제가 생각해..

'나의 고고한 손가락으로 이딴 쓰레기를 계속 들고 다닐 순 없어'라고 생각한다면 말이죠. 다음번에 쓰레기를 버릴 때는 쓰레기 밑에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끼워 두세요. 팁이죠. 당신의 쓰레기를 대신 버려줄 그 누군가의 수고에 대한 대가이자 자칫 당신의 인격마저 쓰레기 취급당할 뻔한 위기에서 당신을 구할 구원책이기도 합니다. 꼴랑 천 원이 인격모독까지 방지하다니 아주 작고 사소하지만 너무 대단한 효과가 아닐런지요 허허. 빨리 동의해 동의하라고

아 만약 지폐가 바람에 날아갈 걸 염려한다면 오백 원짜리 동전 두 개도 괜찮습니다. 햇볕 좋은 날 우아하게 커피까지 들고 나왔는데 주머니에 이 정도 여력이 설마 없지는 않으시겠죠?

속고만 살았나 일단 해보시라니까요. 아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 당신의 몰염치와 무교양과 무미학 취향을 욕하는 대신 당신의 재치와 재기와 유머에 박수를 보낼 테니까요.

아 두고 보시라니까요. 다음번에는 쓰레기 많이 많이 버려달라고 당신에게 기도라도 드릴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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