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말고사 기간이다. 비대면 수업이 일상이 되었고, 서버가 과부하가 어쩌고 저쩌고 하며 시험기간은 자연스레 2주로 늘어났다. 첫째 주는 온라인 시험, 둘째 주는 오프라인 시험 그러니까 학교로 찾아가 시험을 봐야 한다. 시험 기간이 길어지니 벼락치기할 시간을 좀 더 벌어서 좋고, 그만큼 긴장상태가 길어지니 나쁘다.
오늘은 내분비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날, 어쩐지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앉았는데 영 집중이 안 된다. 갈길은 멀고 외워야 할 것은 산더미이다. 책장에서 커다란 종이 한 장을 찾아내 펼쳤다. 각종 호르몬을 여기에다 모조리 적어 놓고, 한꺼번에 외우는 거지. 생각해보니 자료를 만드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다. 접었다.
그렇다면 인쇄해 놓은 강의 자료에서 외워야 할 것들 중심으로 뽑아보자 싶어서 뒤적거렸다. 뽑다 보니 안 중요한 게 없다.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이 방법도 포기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뭐 10시? 헤매는 사이 시간이 자꾸만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자 갑자기 초조감이 몰려들었다.
무거운 마음을 이기지 못해 바람을 쐬러 옥상으로 나갔다. 상추는 잘 있나, 자소엽은 어찌 지내나, 대파는 건강하나 안부를 묻다가 마음이 좀 밝아졌는가 싶을 때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일단 다 때려치우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강의 내용을 처음부터 죽 복습을 먼저 하자고 마음먹었다. 통을 먼저 꿰는 거지. 마음은 그렇게 먹었는데 생각처럼 진도가 안 나가고 있었다. 정보가 머릿속에서 체계화되지 않는 게 자꾸 마음에 걸렸다. 역시 큰 종이 한 장을 펼쳐 놓고 적어가면서 해야 하는 게 맞겠다 싶었다.
다시 처음으로 도돌이표다.
시간은 어김없이 자꾸만 흘러 어느덧 1시, 이번 학기 마지막 온라인 강의를 들어야 할 시각이었다. 이 수업이 끝나면 2021년 1학기 수업이 완전히 끝이 난다.
잠깐만 뭐지, 벌써 오후 3시라고?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오늘까지 제출해야 할 리포트가 있었는데 그걸 깜빡하고 있었다. 내분비학은 접어 두고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 리포트를 쓰려는데 막막했다. 잘 쓰고 싶은데 그러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갑자기 전화를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4시라, 벌써 4시라... 한 것도 없는데 정말 4시라니. 마음이 벌렁거린다. 좀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책상 앞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방을 어슬렁대다가 냉장고 문을 열어젖히고 고기를 찾아냈다. 지금 배가 고프고 안 고프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영혼 없는 몸짓으로 고기를 한 접시 구워 냈다. 그 와중에 옥상에 뛰어 올라가 자소엽과 상추 몇 잎도 따 왔다. 텅 빈 정신에 고기를 집어넣고 났더니 5시다. 다섯 시라... 다섯 시라... 내분비학은 이제 겨우 첫 강을 마쳤을 뿐이다. 아직 리포트도 마치지 못한 상태다. 곧 해가 기울겠지, 오늘 하루가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완벽하게 하고 싶고 그러다 보니 디테일에 집착하고 앞으로 치고 나가지를 못 한다. 진도가 안 나가는 스스로를 보고 있으면 갑갑해져서 다음부턴 진도가 더 안 나가는 사이클에 갇히고 만다. 오늘 같은 일, 종종 봤었단 말이지. 잘하고 싶을수록 잘 못 하게 되는 건 나에게 늘 진리이다.
잘 하지 말자. 제발 좀 잘하지 말자. 그냥 하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해 놓고 보자 말이다. 그만큼 반복했으면 이젠 그냥 좀 할 때도 되지 않았나 이 말이 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