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 도시 피레에프스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나는 그때 항구에서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이 밝기 직전인데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북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시로코 바람이, 유리문을 닫았는데도 파도의 포말을 조그만 카페 안으로 날렸다. 카페 안은 발효시킨 샐비어 술과 사람 냄새가 진동했다. 추운 날씨 탓에 사람들의 숨결은 김이 되어 유리창에 뽀얗게 서려 있었다. 밤을 거기에서 보낸 뱃사람 대여섯이 갈색 양피 리퍼 재킷 차림으로 앉아 커피나 샐비어 술을 들며 희끄무레한 창 저쪽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나운 물결에 놀란 물고기들은 아예 바다 깊숙이 몸을 숨기고 수면이 잔잔해질 때를 기다릴 즈음이었다. 카페에 북적거리고 있는 어부들은 폭풍이 자고 물고기들이 미끼를 쫓아 수면으로 올라올 대를 기다렸다. 서대가, 놀래기, 홍어가 밤의 여로에서 돌아올 시각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날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유리문이 밀리며 건장한 덩치를 한, 옷에 군데군데 진흙이 튄 늙수그레한 부두 노동자 하나가 맨발과 맨머리로 들어섰다.
"여, 코스탄디! 재미가 어떤가?" 하늘색 외투 차림의 늙은 뱃사람 하나가 소리쳤다.
코스탄디라고 불린 사람이 침을 뱉고는 말을 받았다. "그래, 어떨 것 같나? 아침 인사는 술집에 나와 하고, 저녁 인사는 하숙집에 가서 하지! 내 사는 게 이 모양이야. 일거리가 있어야지."
몇 사람이 웃었꼬 또 몇 사람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불경한 소리를 했다.
"산다느 게 감옥 살이지." 카라괴즈 극장에서 개똥철학 나부랭이를 주워들은 듯한 텁석부리가 말했다.
"암, 그것도 종신형이고 말고, 빌어먹을." 창백하고 푸르스름한 빛줄기가 카페의 지저분한 창문을 뚫고 손이며 콧잔등이며 이마를 비추었다. 빛줄기는 내친걸음에 카운터까지 뛰어올라 술병을 휘감았다. 전등이 무색해지자, 밤새 술을 파느라고 잠을 설친 주인이 손을 뻗쳐 스위치를 꺼버렸다.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사람들 시선이 일제히 아직 희끄무레한 창밖 하늘로 향했다. 파도 소리가 들렸다. 카페 안에서는 그 소리가 수연통 빠는 소리와 한데 어울렸다.
늙은 뱃사람이 한숨을 쉬었다. "레모니 선장 어떻게 된 것 아닌가? 아이고, 하느님, 그 사람을 도와주십시오......"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시선을 바다로 돌려 호통을 쳤다. "...... 남의 집구석 망치는 너 바다에게 하느님의 저주가 있을지어다!" 이 말끝에 그는 자기의 잿빛 수염을 깨물었다.
나는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한기가 느껴져 두 번째로 샐비어 술을 시켰다. 나는 자고 싶은 욕망과 이른 새벽의 피로 그리고 적막과 싸웠다. 나는 희뿌연 창문 저쪽의, 뱃고동과 짐수레꾼, 뱃사람의 고함 소리로 깨어나느 ㄴ항구를 바라보았다. 보고 있는 동안 바다, 대기, 그리고 내 여행 계획으로 짜인, 보이지 않는 그물이 내 가슴을 압박하는 것 같았다.
내 시건은 큰 배의 검은 뱃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선체는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비도 멎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서 진창 위로 내리는 빗줄기가 내다보였다.
이런 게 글이로구나!
피곤이 극에 달해 새로운 글 한편을 쓰거나 퇴고하기도 무리고, 필사를 한 편 하려고 책장 앞을 기웃거렸다. 무슨 책이 좋을까나 알. 아. 맞. 혀. 봅. 시. 닷! 그때 눈에 번쩍 뜨이는 책 한 권이 있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이 유명한 책을 아직 나는 읽어 보지 못했다. 대략의 줄거리는 알고 있었지만 책장을 직접 넘겨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중간부터 필사를 할까 하다가 첫 장부터 책 읽듯 타이핑을 하기로 했다. 북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시로코 바람에 부대끼며 한 글자 한 글자 작가를 따라갔다. 어느 한 문장도 허투루 쓴 게 없다는 걸 이내 알아차렸다. 작가가 자신의 문장을 갈고닦고 또 갈고닦아한 문장 한 문장 써 내려가면 이런 책이 나오는구나. "피로 써라!" 외치던 니체의 자라투스트라가 번뜩였다. 그래 이런 게 글이다. 이런 게 바로 시간이 가도 빛을 발하는 문학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나는 데까지 계속 갈까 하다고 두어 페이지를 더 넘겨야 할 것 같아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나도 이렇게 써야지. 이런 글을 써야지. 글다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른 책을 읽어보고 싶다. 시험이 끝나면 하루 종일 뒹굴거리며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