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아니었다

by 김커선

40년을 곰곰이 돌아보면 아쉽게 느껴지는 선택이 있었다. 만약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다가도 그런 선택들마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셈이라 여기면 후회도 자책도 슬그머니 사라지곤 했다. 모든 일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비록 지금은 점으로 남아 있지만 언젠가 그 점들이 선으로 이어질 거라고 믿었다. 그게 언제일지 몰라도, 그게 아닐 수도 있지만 우선은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게 유리했다.


어제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일찍부터 자리에 누웠다. 한잠 자고 난 뒤 눈이 떠졌다. 자정이 조금 넘어서 있었다. 평소라면 잠시 뒤척이다가 이내 잠들었을 것이다. 요즘에는 그렇다. 눈을 감는가 싶게 가슴이 답답해진다. 다시 잠들기가 쉽지가 않다. 밤에 눈을 감는 게 잠들지 못해 괴롭다.


숨을 몰아쉬다 말고 벌떡 일어났다. 옷을 챙겨 입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보름이 사흘 전이었으니 아직 달이 밝다. 조용히 밤이 내려앉은 마을 길을 이리저리 걷기 시작했다. 연못을 따라 빙글빙글 돌았다. 어둔 밤 가운데서도 날 밝자마자 활짝 피려고 준비중인 연꽃 봉오리가 가득하다. 고향 황전은 한낮이 아무리 더워도 밤공기가 차다. 환하게 밝은 길을 두서 없이 한참 걷다가 다시 집으로 길을 잡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여전했지만 나는 이제 인생의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다 틀린 것 같다. 지금까지 옳다고 믿어 왔던 것, 생각해 왔던 것, 실행해 왔던 것, 꿈꾸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다. 40년간 지내 온 날들이 헌신짝처럼 버려지게 생겼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무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지나 온 날들에 별 의미를 부여할 수가 없다. 눈앞이 깜깜해져 버렸다. 아무리 길을 걸어도 뛰어도 가슴은 여전히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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