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밥을 먹으며

by 김커선


작은언니가 주말에 봉화에 갔다 오면서 연밥을 3개 꺾어왔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 나도 4개를 꺾어다가 2개는 할매 앞에 올리고 2개는 서울로 가져왔었다.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냉장고에 넣어뒀던 연밥 한 송이를 꺼냈다. 알이 얼마나 굵었나, 요리조리 살피며 한 알을 까 보았다. 하얀 보드라운 껍질 안에 물기를 잔뜩 머금은 연두색 알맹이가 보인다. 한 이틀만 더 뒀으면 제대로 영글었을 텐데 이른 감이 없잖아 있다.


나 어릴 적에는 동네 할배들이 정자에 나와 앉아서 얼라들은 연못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굴었었다. 연밥은 언감생심, 새벽에 아무도 없을 때 몰래 나가 한 송이 정도 꺾으면 맛이나마 볼 수 있었다. 그것도 긴 장화를 신고 연못 안으로 들어가야지만 연밥을 꺾을 수 있었다. 연못 가로는 연밥이 미처 다 익기도 전에 누가 따 간 건지 어떤 건지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정자에 앉아 장기나 바둑을 두던 동네 할배들은 하나, 둘, 종내 예주로(모두) 다 돌아가시고 말았다. 정자에 올라가는 이 없는지가 벌써 이십 년도 넘었을 것이다. 노인들 만큼이나 아이들도 사라져서 이젠 연밥이 있어도 따 먹을 사람이 별로 없다. 이것도 먹어 본 사람이나 먹지, 요즘 애들은 놀러 와도 먹을 줄이나 알랑가 모르겠다.


식탁에 앉아 한 알 까고, 두 알 까서 연밥 알맹이를 내 입에다 쏙 집어넣었다. 작년 이맘때 할매랑 같이 연밥 먹던 게 생각이 난다. 아직 저녁 먹기 전, 시원한 어스름에 휠체어에 할매를 모시고 연못으로 나갔었다.

7월은 할매가 가장 산책을 즐기시던 때였다. 바로 마을 어귀 가득히 연꽃이 만개했기 때문이다. 할매는 연꽃을 보면 신나서 손뼉을 치고 때로는 노래를 부르셨다. "연밥아아 연꽃아아 닐랑(너는) 내하고 살자아아아~~"

8월을 코앞에 둔 한여름 연못에는 영글어가는 연밥들로 가득했다. 연못 가로 성근 연밥이 주렁주렁했다. 나는 얼른 연밥 한 송이를 따다가 할매 손에 쥐여 드렸다. 그리곤 또 한 송이를 따서 집어 들고 재빨리 알맹이를 깠다. 밥알처럼 하얗고 보드라운 연밥을 할매 입에다 쏘옥 넣어드렸더니, "아이고 맛있다, 아이고 맛난다" 할매는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우리 할매는 좋고 싫고 기호가 명확하셨다. 그래서 뭘 사드리기도 참 편했다.

할매 휠체어를 한 곳에다 고정시켜두고 연못을 돌며 열매가 굵게 성근 송이만 땄다. 연밥 부케를 할매 무릎에 가득 올려두자 할매는 얼른 담요를 펼쳐 연밥을 숨기셨다. 아무렴, 연밥 따갈 사람이 없기는 하지만 마을 공용 재산인데 남보기에 좋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선 마음이 급한지, 이만 집으로 가자고 채근하셨다. 울 귀여운 할매가 참 좋아하는 연밥을 한껏 수확했다는 보람이 밀려왔다.


연밥의 한약재 이름은 연자육으로 신농본초경에 기록된 약재이다. 삽정축뇨 지대약으로 정기를 튼튼히 하고 소변을 다스리며 대하를 감소시키는 작용을 하는 약물 중 하나이다. 이들 약은 간신(肝腎)에 작용해서 하초를 고삽하기 때문에 정기가 밖으로 술술 새는 모든 징후에 사용할 수 있다.

연자육은 비신심(脾腎心)경(經)에 작용한다. 비가 허해서 운화 기능을 제대로 못 하면 설사가 발생한다. 이때 연자육은 비를 보하여 오래된 설사를 치료하고 신이 허하여 정액이 새는 증상을 치료한다. 또한 대하를 치료할 수도 있다. 연자육은 물리적 기능뿐만 아니라 정신을 안정시키는 효능도 있다. 정신이 번잡스럽고 잘 놀라면서 잠을 잘 못 잘 때 치료약으로 쓸 수 있다. 대개 물에 끓여서 복용한다.


그러고 보면 연밥은 우리 할매에게 아주 좋은 약재이기도 했다. 할매는 이제 한잠 드셨는가 싶다가도 곧 일어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혼자 하시다가 새벽이 늦어서야 또 잠을 이루곤 하셨다. 바로 연자육은 불면하는 할매의 심신을 안정시킬 특효약이 되겠다. 또한 기가 부쩍 부치시니 더 이상 기가 술술 새지 않도록 잡아주는 치료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이는 꾸준히 일정하게 먹어야 그 효과를 기대해 볼 법한데, 할매야 워낙 약발이 잘 들으니 일주일이면 진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단 과하게 섭취하면 강한 고삽작용으로 인해 자칫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이것도 기우인 게 할매 사전에 과식이란 없기 때문이다. 늘 적정량을 알아서 드시고 조금만 과하다 싶어도 "고마(그만)!"를 외치시니 그리 걱정할 것은 없겠다.


인제 이 좋은 연밥을 나눠 먹을 할매가 안 계신다. 나도 연밥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웬일인지 올해는 연밥이 모래알처럼 씹힌다. 할매랑 같이 먹을 때는 마냥 고소하고 달기만 하더니…

봄에 핀 앵두꽃을 보며 언제쯤 빨갛게 익으려나 궁금해지면 얼른 할매 생신이 언제인지를 계산해 본다. 할매의 음력 생신은 대개 현충일 전후이고 이때가 되면 어김없이 앵두가 한창이다. 봄부터 이제나 저제나 앵두가 익기를 기다리던 울 할매는 생신때가 다가오면 당신이 좋아하는 앵두를 한 입 가득 맛보실 수 있다.

그리고 올해부터 할매의 기념일이 하나 더 필요해졌다. 연꽃이 언제쯤 피려나 알고 싶으면 할매가 필요하다. 올해 연꽃 시즌은 지나갔고, 내년에 말이다, 연꽃이 언제쯤 피려나 궁금해지면, 우리 할매 제삿날을 헤아려보면 될 것이다. 연꽃을 그렇게나 좋아하던 울 할매는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 떠나가셨다. 2021년 올해는 연꽃이 다소 늦게 피었다. 그래서 할매는 만개한 연꽃을 미처 다 구경 못하고 떠나셨다. 할매는 오래도록 연밥 속에 연꽃 속에 그렇게 오래오래 남아 계실 것 같다.

IMG_6077.jpg



작가의 이전글다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