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 이야기

by 김커선

오늘 범죄심리학 전공자가 사이코패스에 관해 설명하는 걸 들었다. 사이코패스의 가장 큰 특징은 심리적 공감이 결여된 대신 인지적 공감을 한다는 것이란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하나 들어보자.
A가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작업 중이었다.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와 보니 난장판이 벌어져 있었다. 글쎄 음료컵이 넘어져서 노트북이 담뿍 젖어 있는 게 아닌가. A는 패닉에 빠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작업이고 나발이고 되는 일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작업을 접고 귀가하는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 수리비를 예상해 보니 마냥 우울할 뿐이었다.


A는 언니 B에게 전화를 걸었다. 카페에서 자신에게 일어난 황당한 일을 털어놓았다. A가 듣고 싶었던 “안타깝다. 속상하겠다.”는 말 대신 B의 첫마디는 이랬다.

“그러게 접때 내가 그랬잖아. 음료컵 간수 잘하라고.”

A는 단박에 빈정이 상했다. B는 공감 대신 화를 돋우고 있었다. B는 아랑곳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건 그렇고, 컵이 쏟긴 걸 보니 분명 누가 넘어뜨렸겠네. 저절로 그랬을 리는 없을 거고 말이야. CCTV 확인해 봤어? 분명 범인이 있을 거야. 당장 그것부터 확인해 봐. 비용 청구해야지.”
B가 아무리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를 한다 해도 A의 심사는 이미 뒤틀어져 있었다. 이때싶, 자신을 탓하는 말을 하지를 않나, 누가 지금 이걸 해결해 달랬나? 저런 인간에게 애초에 뭘 기대하고 전화를 건 게 잘못이었다. 옳은 말을 저렇게 재수 덜하게 하는 것도 재주다 싶다. 우울한 마음에 B를 향한 원망과 분노까지 더해지고 있었다.


아무튼 감정은 감정이고 그렇다고 앉아서 수십만 원의 생돈을 날릴 수는 없었다. 노트북은 수리비 비싸기로 유명한 사과 회사 제품이었다. A는 당장 카페로 달려가 이러저러하니 CCTV를 좀 확인하자고 했다. B가 족집게였다. 정말로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한 꼬마가 나타나더니 다짜고짜 칸막이를 쓰러뜨리는 게 아닌가. 넘어진 칸막이 때문에 자신의 자리에 있던 컵이 쓰러지는 장면이 그래서 노트북이 망가지는 처참한 광경이 화면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A는 직원과 함께 CCTV를 돌려보며 꼬마와 그 보호자를 추적했고 마침내 연락처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 이후 시간과 감정의 소모가 있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보호자를 통해 노트북 수리비를 온전히 보전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B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딱히 생긴 건 아니었다. 여전히 B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못마땅했다. A는 다시 B와 대화를 시도했지만 감정만 자꾸 상할 뿐이었다. B는 범인을 잡았으면 됐지, 대체 뭐가 문제냐는 거였다. 같은 에너지를 쓸 거면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지, 너의 감정에 공감하는 게 하등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 확고했다. '나에게 그런 걸 기대하는 건 피곤할 뿐이니 앞으로 감정적 공감이나 위로 따위가 받고 싶거들랑 C에게 전화하라'는 게 B의 결론이었다.


앞서 사이코패스에 관한 설명을 들었을 때 문득 A와 B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B는 감정적 공감을 거의 하지 못했다. 평소에도 B는 그런 식이었다. 그렇다고 감정적 공감을 아예 못하냐 그건 아니었다. 상황과 상대를 봐서 자신이 공감하고 싶을 때 공감해야 할 때 그걸 인지하며 공감 스위치를 켜는 식이었다. B의 성향과 성격 그리고 태도를 곰곰이 돌아다보니 그 외 사이코패스 특징들과 상당히, 꽤, 유사하다는 증거가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어허 이것 참. 첨언하자면 사이코패스라고 해서 다 범죄자가 되느냐 혹은 잠재적 범죄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란다. 어흠...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렇다면 말이지, 어쩌면...B는...싸패...? 그리고...그 B… 라는 사람은... 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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