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능(職能)
「1」 직무를 수행하는 능력.
「2」 직업이나 직무에 따른 고유한 기능이나 역할.
광대, 갖바치도 자기 직능을 부끄럽게 여겨서는 아니 될 것이야.≪박경리, 토지≫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10여 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회사원이던 나는 한 지역 인문학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한 달에 한번 다양한 분야의 강사를 초빙해 대중을 상대로 여는 강연이었다. 중동지역 전문가도 오고, 역사학자도 오고, 천문학자도 왔다. 나는 학교를 졸업한 이래 처음으로 강당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강의다운 강의를 수강했다. 좀이 쑤시는 기분이었다. 어쩌다 보니 나는 운영위원에 명단을 올렸고 다달이 회비까지 납부하게 되었다. 강연이 끝나면 강연자와 운영위원은 함께 차를 마시거나 가벼운 맥주를 한 잔 하기도 했다. 거기서 동네 유력인사들을 여럿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 번은 지금처럼 비가 억수같이 쏟아붓던 날이었다.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서 우산을 들고 서 있기만 해도 옷이 담뿍 젖었다. 그날도 인문학 강의가 있었고 강연자와 운영위원 몇몇은 인근 맥주집으로 이동했다. 나는 구석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아 안주로 나온 치킨을 마구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때 '땡그랑' 종소리와 함께 가게 문이 열렸다. 아저씨 한 명이 우리 쪽을 향해 밝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런데 앉는 품이 엉거주춤한 게 어색했다. 아니나 다를까 옷이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다들 왜 이렇게 젖었냐고 질문을 던졌다.
"아니 거의 다 왔는데 차에 와이퍼가 고장 났지 뭡니까? 비는 막 퍼붓지, 하는 수 없이 왼쪽 손으로 와이퍼를 수동 작동시키면서 왔아요."
운전 도중에 와이퍼가 급작스레 고장이 났다. 아저씨는 운전석에서 밖으로 몸을 내민 채 와이퍼를 손으로 움직여가며 운전을 했다. 그 나불에 온 몸에 비에 젖은 것이다. 아니 와이퍼가 그 지경이 되도록 왜 그냥 놔둔 거지? 앞이 안 보이는 차를 어떻게든 몰아왔다니 생각만 해도 아슬아슬했다.
알고 봤더니 그 아저씨는 지역구 국회의원을 하다가 당시 낙선한 신세의 정치인이었다.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는 게 현직이든 낙선자든 어쨌거나 지역구 관리를 해야 한단다. 그러자면 이런저런 모임에 가급적 많이 참여하는 게 필수다. 지역 현안을 파악한다는 등등의 이유도 있겠지만 평소에 지역민을 하나라도 더 만나 얼굴도장을 찍어두는 의의가 크다 하겠다. 나는 정치인의 생리를 이때 처음으로 보고 알았다.
이 날 나는 비에 흠뻑 젖은 아저씨를 보면서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대단하다고들 하는데 낙선한 국회의원만큼 애처로운 신세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론 이런 궁금증도 일었다.
'정치인들은 직업이 없나? 아니 직능이 없나? 국회의원이거나 아니면 그냥 백수야?'
'나는 직능을 가져야겠어.'
그날 처량한 신세의 낙선자 정치인을 보면서 나는 앞으로 뭘 하고 먹고살든 나만의 직능을 가져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당시 평범한 회사원에 불과하던 나는 뚜렷이 내세울 특기나 능력이 없었다. 내일 없어져도 바로 대체될 그저 그런 신세의 직장인이었다. 나만의 직능이 무엇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걸 찾고 싶었다. 실직한다 해도 곧바로 나의 직능을 살려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걸 찾고 싶었다.
뭘 해야 할지 모르던 나는 회사원은 아니라는 것만 알고서 무작정 회사를 나왔다. 이후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살기도 했고 유라시아 대륙을 2~3년간 헤매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길바닥에서 무언가 해답을 찾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TV를 켰더니 그때 비에 흠뻑 젖은 생쥐꼴을 하고 있던 바로 그 아저씨가 나왔다. 아저씨는 다시 국회의원이 되었고 재선을 했고 모르겠다, 삼선인지 아무튼 내내 국회의원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원내대표라는 자리까지 오르는 등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하는 중이었다.
빈손으로 한국으로 귀가했던 나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답을 찾게 되었다. 바로 할머니의 병간호를 하면서 내 평생의 직능을 하나도 아니라 두 개나 발견하게 된 것이다.
할머니 병간호로 심신이 지쳐있던 나는 동생의 권유로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여행기를 쓰다니,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한 편이 두 편이 되고 두 편이 서른 편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글쓰기의 매력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마음이 힘들 때도 어려울 때도 좌절할 때도 좋을 때도 언제든 글은 내 가장 좋은 친구이자 치유제가 되어준다. 평생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
할머니 병간호를 하면서 확실히 깨달은 게 있었다. 나는 약에 관심이 많구나. 양약보다도 한약에 관심이 있구나. 그 길로 나는 예전에 중도 작파했던 한약학과에 재입학하였다. 그리고 이제 졸업을 코앞에 두고 있다. 평생 한약사로서 한약을 공부하고 임상에 적용하면서 살고 싶다는 게 두 번째 소망이다.
10여 년 전 비에 흠뻑 젖은 채 '직능을 가지라'라고 몸소 외쳐준 정치인 아저씨와 그리고 대퇴부가 부러져 가면서도 그걸 꿋꿋이 이겨낸 할머니가 계셨기에 지금의 내가 나의 업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정치인 아저씨야 지금도 잘 나가니 굳이 기억에도 없을 내가 고맙다 인사할 필요가 없겠다. 다만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었던 우리 할매가 이제 돌아가시고 없다니 그게 아쉽다. 할머니에게 감사하다고 이야기를 드려야 하는데 그 말을 생전에 못 한 것 같다. 그 고마움을 평생 간직하고 있다가 나중에 다시 할매를 뵙거든 그때 꼭 말씀드려야겠다. 그 사이 나는 말이다, 할매가 어렵게 찾아준 나의 직능을 말이다, 그걸 계속 갈고닦아 어떻게 하면 쓰임새가 있으려나 고민하고 실천하며 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