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지 마라 말이야"라는 개그 유행어를 알고 있다면 당신의 나이는 아흑...
어젯밤을 새웠습니다. 오늘 아침 9시에 전공시험이 있었는데 밤을 새우지 않고는 도저히 전범위를 커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죠. 밤에 잠 안 자고 공부하라니 집에서라면 벌써 몇 번이고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일어났다 정신을 못 차릴 터였지요. 허나 요즘 저는 인왕산 자락이 눈앞에 턱 하니 자리한 전망 좋은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 중이다 이 말씀. 요즘엔 독서실이 없어지는 추세인 모양입니다. 대신 댄디한 인테리어에 커피머신 등 최소한의 편의시설을 갖춘 스터디 카페가 대세입니다. 스터디 카페, 스터디 카페 단어가 은근히 길고 입에 안 붙는다 싶더라니 역시나 아이들은 '스카'라는 줄임말을 사용하더라고요. 나도 원래부터 알고 있던 척 짐짓 자연스럽게 스카 어쩌고 말해야지.
여기서 잠깐! '배라'가 뭐의 줄임말인지 아시는 분? 바로바로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 배스킨 라ㅇㅇ의 말줄임이랍니다. "배라 앞에서 보자"는걸 무심코 "응"하고 대답했다가 하마터면 약속에 못 나갈 뻔했습니다. 지도에서 아무리 배라를 검색해도 없더라니. 아놔 저같이 둔한 사람들은 단박에 알아채지 못하는 단어 투성이입니다. 근데 지금 이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고요.
20대 때는 밤새 술을 마시고도 그다음 날 거뜬히 강의를 들었지요. 술자리는 대개 애매한 시간에 파해서 이미 차는 끊겼지, 돈은 없지, 그러면 그냥 두 시간을 무작정 걸어서 집으로 갔습니다. 하루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택시 기사님께 5천 원어치만 태워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습니다. 야간 할증이 붙은 미터기는 순식간에 5천 원을 찍었고 "그럼 이만, 저는 여기까지" 부시럭대며 내릴 준비를 했습니다. 마음씨 좋은 우리의 기사님은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합승 승객을 구해가면서 저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기사님이야 말할 것도 없고 흔쾌히 합승에 동의해준 승객도 참 고마웠지요. 어떤 날엔 걷기도 피곤하고 수중에 5천 원마저 없으면 근처 파출소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XX학교 XX학과 학생입니다. 저... 프로젝트하다 늦었는데 첫 차 다닐 때까지만 좀 앉아 있어도 될까요?" 술냄새를 펄펄 풍기며 뻔한 거짓말을 늘어놓아도 경찰관 아저씨들은 모르는 척해줍니다. 그러면 최대한 조신하게 탁자 위에 전공서적을 펼쳐놓고 앉아서 그 위로 머리를 쿵쿵 찧어가며 정신없이 졸아댔습니다. "학생! 첫 차 지나갔어!" 큰 소리로 저를 깨우는 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부스스 일어났지요. 그때 저를 움찔하게 만들던 서늘한 새벽 공기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 시절에는 낮을 밤 삼아, 밤을 낮 삼아 참 열심히 놀았더랬습니다. 지금이야 체력이 고갈 나서 밤을 새우는 건 고사하고 자정을 넘기기도 힘듭니다. 이런 제가 어젯밤을 새웠다니까요.
정말 오랜만에 밤을 새운 날이었습니다. 자정이 고비였지요. 자정 무렵이 되자 정신을 차리기 힘들 만큼 잠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항우 장사도 못 이기는 눈꺼풀을 제가 뭐라고 이기겠습니까? 그럴 땐 10분이라도 눈을 붙이는 수밖에요. 푹 잠들어선 안 된다 생각하니 더더욱 잠이 꿀잠입디다. 의식이 드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며 한 시간을 버텼더니만 겨우 맑은 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정신이 들었나 싶어도 막상 책을 보고 있으면 어느 결엔가 저절로 눈꺼풀이 감기고 시공간 감각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들여다봤습니다. 신기한 게 앉아 있으면 그렇게 쏟아지던 잠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거짓말처럼 사라지더라고요. 인간승리에 가까운 고군분투 속에서 시험 시작 30분을 앞두고 시험 전범위 정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웬일로 시험이 끝나고도 정신이 맑다 싶더라니, 다시 '스카'로 돌아와 의자에 앉는 순간부터 못다 한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산에서 바위 굴러 떨어질 듯 잠이 무지막지하게 닥치더라고요. 뇌는 지난밤 못다 한 잠을 보충하기 위해 저를 반수면 상태로 몰아넣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5pm에 글을 이렇게라도 올리고 오늘은 일찍 들어가 자야겠습니다. 스카엔 내일 맑은 정신으로 새벽 일찍부터 나오렵니다.
저의 저질 체력에도 불구하고 지난밤을 새울 수 있었던 데에는 약의 힘과 함께 사람의 힘도 있었습니다. 어젯 밤 내내 보중익기탕이며 평위산이며 오적산이며 제가 지닌 과립제란 과립제는 죄다 탈탈 털어 수시로 입안으로 들이부었습니다. 아! 각종 영양제도 함께요. 그래서 생각보다 극심한 피로감이 닥치진 않았습니다. 또 어제 스카에는 저 말고도 밤을 새운 중고딩 동료들이 몇명 더 있었습니다. 비록 주야장천 엎드려 자고 있었을지언정 그 친구들이 버텨주었기에 저 역시 심심하지 않은 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근데 이게 왜 오늘 5pm의 글의 주제가 되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저의 정신이 저의 정신이 아니라는 건 알겠습니다. 정신이 계속 들어왔다 나갔다 합니다. 이만 귀가를 서둘러야겠습니다. 오늘 밤엔 모두 꿀잠 주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