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귀

by 김커선

인간의 본능 가운데 하나는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멀고먼 옛날에도 호모 사피엔스들은 사흘 밤낮동안 100킬로미터를 걸어가 동료와 1시간 이야기를 나눈 후 돌아왔다고 한다.

'듣는 귀'를 가진 사람과의 대화는 늘상 즐겁다. 내가 생각하는 듣는 귀란 누군가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속에서 핵심을 뽑아낼 줄 알고, 그걸 자기화해서 생각하고 표현할 줄 아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양쪽 귀를 가지고 있는데 듣는 게 뭐가 어렵냐 싶겠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자기 자신에 대한 과도한 믿음(자아도취 또는 자의식과잉) 혹은 자기 생각이 그야말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어 바늘 하나 들어갈 구석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두뇌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다. 마치 솜으로 귓구멍을 틀어 막아놓은 모양새이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 듣는 귀와 대립되는 '막힌 귀'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막힌 귀를 가진 사람들은 대화를 나눌 때 방어적인 태도로 자꾸만 자신을 변명한다거나 혹은 "응응 그렇지 그렇지"하는 식의 영혼 없는 무한 긍정의 대답을 늘어놓기 십상이다.


듣는 귀를 가진 사람이 좋은 이유는 바로 타인에게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소위 메아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A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기 식으로 소화한 뒤 A' 혹은 아예 다른 B를 꺼내 놓을 줄 안다. 사고가 유연한 사람들이다. 이야기에서 핵심 한 줄기를 뽑아낼 만큼 두뇌활동도 우수한 편이다. 무엇보다 상대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준다는 것, 그것만큼 화자(話者)를 기쁘고 보람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듣는 귀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눌 때면 도무지 화제가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사고가 언어로 표현되는 연결고리는 뇌를 끊임없이 자극하며 사고의 확장이라는 선순환을 이룬다. 이런 시간을 가리켜 '생산적'이고 '유익'하다고 할 수 있겠다.


듣는 귀를 가진 두 사람이 마주 하고 있다면 어떤 엔터테인먼트도 저리 가라다. 앉은자리가 영화관이고 앉은자리가 도서관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깊은 영혼까지 즐겁게 만든다. 주변에 듣는 귀를 가진 이가 있다면 당신은 엄청난 행운아일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처럼 삼백리 길을 마다않고 찾아가도 좋겠다. 요즘처럼 온라인으로 째깍 연결되는 시대에 시간과 공간의 다름이야 아무 문제가 안 되니 듣는 귀의 친구를 사귀기에는 더없이 좋은 시절이다.



작가의 이전글잘하지 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