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중부의 한여름은 낮이 길었다. 새벽 4~5시면 날이 밝아 왔고 밤 10시는 넘어야 사방이 컴컴해졌다. 그러니까 이번이 유럽에서 맞는 두 번째 여름이었다.
처음 유럽에 도착해서는 3개월간 오롯이 히치하이킹으로만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겨울이 다가오자 나는 철새처럼 러시아를 거쳐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 동남아시아로 날아갔다. 거기서부터 인도, 이란, 터키를 경유하며 유럽으로 되돌아온 참이었다.
여름휴가철을 맞은 유럽의 유명 관광지들은 관광객들로 들끓고 있었다. 그들 틈에 섞여 성당과 박물관을 방문하고, 기념품을 고르고, 노천카페에서 적당히 앉아 쉬는 여행이라니 생각만으로도 지루해서 견딜 수 없었다. 지난 히치하이킹의 모험을 잊을 수 없었던 나는 이번에도 색다른 방식의 여행을 원했다. 보통의 관광객과는 달리 오히려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한 유럽의 풍광을 보고 싶었다. 관광객은커녕 현지인조차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방문할 일이 없는 조그마하고 구석진 길들처럼 일상의 배경이 되는 곳들 말이다. 마침 한낮 길이도 길겠다, 자전거 도로도 잘 닦여 있겠다, 자전거 여행하기 이보다 좋은 때는 없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 자전거로 통학을 한 데다 대학시절 서울에서 제주까지 자전거 무전여행을 한 경험이 있었다. 또 우즈베키스탄에서도 한 달간 자전거 캠핑 여행을 했었기에 자전거 여행이 아주 낯설지만은 않았다. 이번에는 자전거를 가지고서 유럽 땅을 이리저리 누벼보기로 했다.
두 번째 유럽 여행은 독일에서 시작되었다. 독일은 유럽 교통의 중심지답게 동서남북 사통팔달로 통했다. 저가항공으로 1~5만 원가량이면 유럽의 웬만한 유명 도시로 이동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난생처음 독일 슈퍼마켓에 들렀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식료품 가격이 깜짝 놀랄 정도로 저렴해서 내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었다. 1리터짜리 우유 한통에 900원, 치즈 한팩 1000원, 버터 한 덩이 1300원, 납작 복숭아 1킬로 1300원. 전반적으로 물가가 높은 유럽에서 독일은 나에게 먹거리 천국을 선사해 주었다.
당연하다는 듯 나는 자전거 도로가 잘 닦여 있고 생활물가가 저렴한 독일을 베이스캠프 삼아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기로 했다. 중고 자전거를 6만 원에 구입하고, 3만 원짜리 텐트와 1만 원짜리 자전거 가방 그리고 타이어 공기주입기, 형광봉, 안전조끼, 스마트폰 거치대등도 준비했다. 물론 한국에서부터 나와 한 몸처럼 여행 중인 침낭도 함께 할 것이다. 2~3일 치 숙박비에 불과한 돈을 투자해 자전거 캠핑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나는 독일을 출발해 벨기에를 향해 방향을 잡았다. 내가 여행 시작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유럽에는 때마침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이번 자전거 여행은 바로 다음 목적지만 정해놓았을 뿐 그다음 계획은 물론이고 장기 계획은 더더욱 오리무중이었다. 여행이 언제 끝날지, 어디로 갈지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었다. 나는 현지인에게 조언을 구하며 다음 목적지를 정하고, 또 지도를 보다가 들르고 싶은 곳이 생기면 가 보기로 했다. 먹거리는 마트에서 빵, 버터, 치즈, 햄, 과일 등을 구입해 해결하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혹은 체력이 허락하는 만큼 여행을 이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머리를 비우고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여행하자는 의도야 그럴싸했지만 막상 출발일을 코 앞에 두고 보니 무력감이 몰려왔다. 긴 여행길과 고된 여정이 곧 닥친다 생각하니 만사가 귀찮고 마냥 누워만 있고 싶었던 것이다. 근력운동을 미리 해야지 하면서도 빈둥거렸고, 방문 예정인 도시에 관한 정보도 미리 찾아보지 않았다. 계획이든 컨디션이든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도리어 아무런 시작을 못 했고, 또 아무것도 안 하는 스스로를 참고 보기가 괴로워 다시 무기력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하기엔 실낱같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앞으로 길 위에서 어떤 이들을 만나게 될지, 밤에는 어디서 잠자리를 구해야 하는지, 과연 체력은 버텨줄지 비록 걱정이 산더미 같았지만 어찌 될지는 시작해봐야 알 수 있는 법이었다. 자연은 길을 찾아줄 것이고 어떻게든 길은 열릴 것이라는 믿음을 꾸역꾸역 되새겼다. 이 믿음을 다시 한번 온몸으로 확인해 보자며 겨우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끌려가는 소처럼 출발 아침에야 억지로 몸을 일으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그러고 보니 자전거를 마련해놓고도 미리 타 볼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었다. 말만 자전거 여행이지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정말 내가 이 여행을 해 나갈 수 있을까 나는 크나큰 의문에 휩싸이고 말았다.
생각보다 출발은 수월했다. 첫날부터 무리하면 안 될 것 같아 목표 거리를 65킬로미터로 짧게 잡았다. 시내를 벗어나는데 길을 좀 헤매기는 했으나 어느 순간 경사 없이 쭉 뻗은 길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저 너머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길은 평탄했고, 자전거 선진국답게 자전거도로 역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자전거 도로가 아닌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밭 옆을 지나가도, 도심을 가로질러도 항상 자전거 도로가 멋지게 뻗어 있었다. 일기예보도 날씨 맑음 맑음이었다. 그저 씽씽 달리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아무리 천천히 달려도 한 시간에 10킬로미터 이동은 무난할 것이고, 목적지엔 넉넉잡아 6~7시간 후면 도착할 것 같았다.
출발한 지 4시간쯤 지났을까? 생각처럼 자전거 속도가 오르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일단 짐이 너무 무거웠다. 배낭 무게가 평균 10킬로그램, 생수 2킬로그램, 먹거리 3킬로그램으로 짐 무게만 대략 15킬로그램이 넘었다. 아무리 평지길이라도 지속적으로 페달을 밟아대는 게 점점 힘에 부친다 싶었다. 설상가상으로 목적지까지 20킬로미터를 남겨두고는 허벅지 통증이 시작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자전거 도로 위에 나를 앞지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퇴근 무렵이었다. 50대 아저씨 아주머니도, 어린아이들도 모두들 나를 씽하고 앞질러 갔다. 허벅지만 안 아팠어도 속도를 좀 내보겠는데 역부족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지어 80대로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씽씽 소리를 내며 내 옆을 지나쳐갔다. 이제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분들에게 마저 뒤처지고 있었다. 나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너무 느리다는 게 분명해지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더 페달을 힘차게 밟아댔고 이런 노력을 비웃듯, 새로운 자전거 무리가 나타나 속속들이 나를 앞지르며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대체 나의 체력이 어느 정도길래 꼴찌가 되어 버렸을까? 이런 식이라면 내가 앞으로 자전거 여행을 해 나갈 수 있으려나 좌절감마저 들었다.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달래고 참아가며 해가 질 무렵에야 겨우겨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에서 따뜻한 샤워를 하고 실내에서 다리를 쭉 뻗고 누우니 이곳이 천국이구나 싶었다.
이튿날 날이 밝자 다시 자전거를 달리기 시작했다. 목표 거리는 어제의 두 배였다. 다행히 첫날 나를 괴롭히던 허벅지 통증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어설픈 나의 자전거 여행의 스타트가 끊어졌다.
독일에는 자전거 인구가 많았다. 자전거 길은 달려도 달려도 지평선과 나란히 이어졌고 어김없이 뒤에서 나타난 사람들이 나를 저만치 앞질러 나아갔다.
'다들 왜 저렇게 잘 달리는 걸까? 대체 저 어르신들은 뭘 드시기에 저렇게 힘차게 달리는 거지? 그리고 나는 대체 왜 이렇게 처지는 걸까?'
하루, 이틀, 사흘 자전거 여행이 일주일을 넘기고 관성이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전거길에서 가장 뒤처진 사람은 언제나 나였다.
자전거 여행이 열흘째 접어들던 날, 나는 독일인 사이클리스트 벤야민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벤야민은 여자 친구와 함께 장장 6년에 걸쳐 자전거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모험가였다. 그들은 독일을 출발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아세안 국가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자전거로만 여행을 했다. 이들의 사진과 여행기록을 담은 책자는 거의 백과사전 만한 두께였다. 긴 모험이 끝난 뒤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두 딸을 낳아 잘 사는 듯했으나 2년 전 이혼을 했단다. 긴 시간 고되고 어려운 고비를 함께 넘기고 그 많은 추억을 공유한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생활은 또 다른 이야기였던 모양이다. 이렇게 대단한 결혼이라니, 도대체 결혼 생활이란 얼마나 더 힘들고 고된 여정이길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고, 나는 진지한 얼굴을 하고 벤야민에게 질문을 던졌다.
"벤야민, 도대체 독일인들의 체력은 얼마나 대단한 거야? 호호백발 할머니들도 얼마나 힘차게 자전거를 타는지 몰라. 매번 그냥도 아니고 휑하고 나를 앞질러가면 내 스피드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돼."
그러자 그는 껄껄 웃었다. 할머니들이 그렇게 자전거를 잘 타는 데는 비밀이 있단다. 그건 바로 전기자전거였다. 독일에서 자전거를 이동수단으로 삼는 많은 노인 중 상당수가 전기자전거를 타고 다닌단다.
"장담컨대 너를 스쳐 지나간 할머니들은 전기 자전거를 타고 있었을 거야. 걱정 마, 그분들보다 아무렴 네가 더 늦기야 하겠어?"
그래서 항상 뒤처졌다 생각하니 실오라기 같은 위안이나마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의문이 완전히 풀린 건 아니었다. 노인분들이야 그렇다 쳐도 내가 아는 한 나는 항상 꼴찌였다. 자전거 도로에서만큼은 연령과 성별을 초월해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 나갔다. 물론 어느 누구도 나의 더딘 속도와 저질 체력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저 나를 앞지르는 사람들을 목격할 때마다 스스로 조급증이 났을 뿐이다.
하루는 라인강을 따라 홀로 자전거길을 달리던 어느 날이었다. 주변 풍광을 감상하며 천천히 페달을 밟아갔다. 바쁠 것도 없고 조급할 것도 없었다. 오늘도 그저 갈 수 있는 만큼 가다가, 날이 저물면 발길 닿는 곳에다 텐트를 치고 잠을 청하면 되었다. 인적이 드문 길에선 내 앞을 달리는 이도 나를 앞질러가는 이도 없었다. 내 마음은 잔잔한 강물만큼이나 고요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문득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지금까지 길 위에서 숱한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 갔다. 초등학생 꼬마도 백발의 할머니도 허리가 구부정한 할아버지도 모두들 나를 앞질렀다. 그들이 전기자전거를 타든 아니든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어야 했다. 그들을 쫓아간답시고 속도를 높여도 보고 무리하게 페달을 밟아대기도 했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그런 식의 레이스는 금방 몸을 지치게 했다. 곧 뒤처진 나의 처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지금껏 나를 앞지르는 사람들만 볼 수 있었지 나보다 뒤에 있는 이들은 볼 수 없지 않았나? 앞만 보고 달리니 내 뒤를 따르는 이들이 과연 누구인지, 얼마큼 있는지 알 수도 만날 수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들만 목격하고선 '자전거 타는 사람 중 내가 제일 약해 빠졌다'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멀리서 좀 더 멀리서 지켜봤더라면 내 뒤에도 분명 수많은 사람들이 자전거 페달을 밟아대고 있었을 것이다. 나를 앞지른 이들조차 1킬로미터를 갔는지, 2킬로미터를 더 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들이 도중에서 사라져 버린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길 위에 있었다. 속도가 느리든 어쨌든 여전히 길 위에서 버틸 힘 정도는 남아 있었다. 길 위의 모든 사람들과 나는 애초에 자전거를 타는 목적도 달랐고 도착지도 전혀 같지 않았다. 그저 한 순간 서로를 마주쳤을 뿐이다. 비교대상 자체가 아니었던 걸 굳이 나는 스스로 경쟁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비로소 마음에 여유가 느껴졌다. 나에게 중요한 건 나만의 페이스를 찾아 달리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누군가와 비교할 일도 필요도 없었다. 나만의 속도로 나의 목적지를 향해 끈기있게 달리면 되었다. 햇살이 뜨거울수록 상쾌한 강바람이 더더욱 반갑게 느껴진 날이었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여유롭게 자전거를 달리며 나는 진심으로 이 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