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초이튿날, 그러니까 설을 쇤 다음날 작은언니와 함께 청량산엘 올랐다. 산정상까지 등산을 한건 아니고 산중턱에 자리한 청량사를 향하는 길이었다. 청량사는 내가 봉화에서 아니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절이고 산사이고 장소이다. 탁 트인 야외법당에 우뚝 서면 청량청량한 산세 속에 가득 품어지는 것 같다. 그 느낌이 특별하고 좋다.
작년 한 해 운동을 꾸준히 해 둔 덕분에 가파른 경사길을 쉬이 오를 수 있었다.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사찰이 여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 언니가 청량사 주지 운담스님과의 인연이 있어 애초 계획에 없던 스님과의 차담(茶啖)이 있었다. 스님은 따끈하고도 구수한 보이차를 끓여 내어 주셨다. 마르던 입안에 꿀 같은 차가 들어왔다.
"우리가 얼마나 고정관념에 쌓여 있을까요?"
스님께 이런 표현을 써서 죄송하지만 여하튼 '생글생글' 웃는 얼굴에 장난기 가득 묻어나는 표정으로 스님이 물어왔다. 고정관념이라, 나의 고정관념이라.... 스님은 승가대학 시절 겪은 경험 한 토막을 들려 주었다. 냉철한 과학도라면 그 지극히 매우 몹시 낮은 확률을 대충이라도 계산하기에 선뜻 믿기 어려운 일화였다. 스님의 고정관념이 깨진 일화라는데, 흠... 저렇게 정직한 얼굴을 한 스님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스님과 즐거운 대화가 오고 가는 중에 마침 점심 공양시간이 다가왔다. 맛있는 떡국과 절 비빔밥을 달게 먹은 뒤 다시 주지스님과 함께 인근 암자 응진전으로 향했다. 아직 눈이 가득 덮여 미끄러운 좁은 산길을 스님은 고무털신을 신고도 훌훌 잘만 오른다. 그야말로 깊은 산속에 자리한 암자에서 이번엔 암자 주인 운경스님께 속세에서도 맛보지 못한 사이폰으로 우려낸 커피를 대접받았다. 웃음이 연신 터지던 즐거운 대화소리가 산세 속으로 뻗어나가 저 앞산 봉우리에 닿을 것만 같았다.
운담스님과 함께 다시 왔던 눈길을 되짚어 산을 내려왔다.
"마음을 잘 지켜봐요. 마음에 일어나는 것들을 가만히 지켜봐요."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할까 온 신경을 발에 집중하는 사이 스님이 꺼내온 말 한 줄기는 내 머릿속을 시원하게 훑고 지나갔다.
스님이 선물한 달력을 품고서 이제는 집으로 하산할 시간이다.
속세로 돌아와 생활하다가도 문득 운담스님이 꺼냈던 말씀 줄기가 명징하게 떠오르곤 한다. 내가 가진 고정관념이란 내가 하는 거의 모든 생각 속에 스며 있다. 떠오르는 생각의 원뜻을 딱 서술어만 반대로 뒤집으니 실소가 슬슬 터지도록 재미지다. 내 생각들이 곧 내가 키워 온 고정관념이라는 걸 알겠다. 교육받은 혹은 스스로 만들어 둔 고정관념이란 녀석들이 어찌나 도처에 있는지 1분간 세다가 하마터면 숨 넘어가는 줄 알았다.
올 2023년은 고정관념을 뒤집는 해로 만들려 한다. 그러자면 내가 하는 생각을 탁하고 순간 잡아채서 뒤집든 엎든 깨부수든 하여튼 그럴 줄 알아야 한다. 지켜보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나의 시간은 순방향대로만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때때로 내 시간은 거꾸로도 갈 것이며 그때마다 나의 마음은 조금씩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널을 뛸 것이다. 떠오른 생각을 어떻게든 글로 옮기려다 보니 벌써 새벽 1시라... 너무 늦게 자면 성장호르몬이 어쩌고 피곤이 덜 풀리고 저쩌고 당연히 늦게 일어나... 따지고 보면 이것도 고정관념이다.
2023년은 내 가진 고정관념을 응시하고 그걸 전복시키는 해로 만들어야겠다. 벌써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