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식물과 같아.
니가 주면 줄 수록 더 많은 걸 수확할 수 있을 거야.
사람이 아무리 지각없고 잔인한 성품을 지녔어도 식물을 때리지는 않잖아?
우리는 그렇게 식물을 대하 듯 우리 아이들을 대해야 해, 존중해야 해."
튀지니의 중소도시 스팍스에 도착한 날이었다. 아이다 아주머니는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여행자를 환영하며 시원한 아이스크림 가게로 안내했다. 그녀는 튀니스에서 만난 소아과의사 소피아 아주머니의 친구의 친구였다. 우리는 마치 원래도 막역히 알고 지낸 사이처럼 친근하고 편안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아이다 아주머니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었다.
아이다는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다. 이란성쌍둥이인 의대생 딸과 공대생 아들을 둔 50대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암투병을 하고 있어서인지 낯빛이 어두운 게 병색이 보였지만, 말소리만큼은 힘이 있고 눈빛도 형형했다.
아이다는 특히 자신의 딸에게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살라고 가르쳤다. 종교나 사회 통념 혹은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는 대신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따를 줄 아는 용기를 지니라고 말이다. 우즈베키스탄이라는 이슬람 사회에서 2년간 살았던 나는 이게 얼마나 획기적인 교육인지 알았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딸은 엄마의 가르침을 잘 새겼는지,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자유분방한 사생활을 즐기는 듯했다. 대신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고 거기에 책임질 줄도 아는 젊은이였다. 아이다 아주머니는 이슬람 사회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어머니이자 여성이었다.
아이다의 어투는 강하고 단호했지만 그 이면에는 따뜻하고 깊은 배려심이 공존했다. 무엇을 물어도 답을 내려줄 것 같은 현명함, 어떤 말을 해도 이해받을 수 있을 듯한 성숙함도 깃들어 있었다.
여태껏 그녀처럼 강한 인상을 남긴 여성이 없었다. 뚜렷하면서도 성숙하고 지적인 내면을 가진 여성. 나는 여성으로서의 롤모델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오랜 민주주의 발전 역사를 가진 유럽의 어딘가가 아닌, 이슬람의 변방국가인 튀니지의 한 작은 도시에서 말이다.
"하루는 한 남자아이의 표정이 너무 안 좋은 거야. 그래서 물어봤지.
'얘야 너 무슨 일 있니?'
그러자 아이가 자기는 삶이 너무 우울하다는 거야. 아빠는 항상 돈 버는 일에만 골몰하고 자기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거지. 버려진 것 같대. 그래서 내가 그 애에게 얘기했어. 네가 아빠에게 어떤 느낌을 갖고 있는지, 앞으로 아빠가 너에게 뭘 해줬으면 하는지 편지를 써서 아빠가 보게끔 탁자 위에 놓아두라고 말이야.
한참이 지나 그 아이를 다시 봤는데, 내게 다가오더니 '선생님 덕분에 제 삶이 완전히 바뀌었어요'하는 거야. 내가 시킨 그대로 했더니 그 순간부터 아빠가 바뀌더래."
"부모는 아이가 뭘 원하는지 몰랐던 거예요? 어떻게 모를 수가 있죠?"
"많은 부모들이 애들에게 돈으로 해 줄 수 있는 걸 전부라고 생각해. 그런데 아이들은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거든."
아이의 표정을 알아채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 주는 선생님, 거기에 현명한 해결책까지 제시해 주는 선생님. 이런 어른이라니 너무 멋있는 거 아닌가? 나도 그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천성이 타고나길 현명하게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이 곧바르고 말이 물처럼 흐르며 태도가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사람들, 자연스레 우러러 보게 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내 친할머니도 그런 분이었다. 그렇지 못한 나는 그래서 여행을 한다. 부딪치고 깨지고 만나고 배우고 생각하고 깨닫고, 짧은 시간안에 집적된 경험을 한다. 이렇게라도 하면 후천적 현명함을 약간이라도 득하려나?
나는 또 하나의 선천적 현자 앞에 마주 앉아, 아이스크림이 녹아가는 줄도 모르고 그녀와의 대화에 깊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