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고향이 없다

by 김커선

"오늘 엄마 고향에 한번 가볼래?"

새벽기차를 타고 봉화 집에 내려와 늦은 아침을 먹는 중이었다. 오후에 어디로 한 바퀴 휘돌아볼까 의논을 하는데, 엄마가 며칠 전부터 고향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드셨단다. 매사 덤덤하고 무던한 엄마는 특별히 먹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그런 엄마에게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니 열일 젖혀 놓고 반드시 가야 한다.


엄마는 안동 사람이다. 도산서원 옆동네 분내 마을이 고향이다. 70년대에 안동댐 수몰지구로 지정되는 바람에 작은언니가 나던해 외가는 안동시내로 나와야 했다. 엄마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던 외가는 어떤 곳에 자리했을까 오늘 드디어 보게 된다니.


다행히 며칠 전부터 날이 눅어서 갓길 없는 지방도 사정이 매끄럽다. 산그늘에도 얼음이 박혀있지 않은 따뜻한 날이었다. 고작 40여분 밖에 걸리지 않는 길인데 엄마는 20년 만에 와본다고 했다.


분내 마을은 한쪽 산기슭으론 낙동강을 끼고 반대쪽으론 탁 트인 너른 들이 있었다. 기름진 퇴적토라 농사도 과실수도 잘되었다. 빽빽하니 우거진 솔밭에선 고고한 학이 무리 지어 앉은 멋진 광경을 매일 볼 수 있었다. 아침마다 동네 아이들과 뛰어서 도산서원을 지나 학교를 갔다. 부지런하고 까탈스러운 외할아버지 성정 덕에 외갓집은 마당에 먼지한 톨 없으리만치 잘 정돈돼 있었다.


이제 큰 기와집이 뜯어졌고 엄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또 그 할아버지가 대대로 살아오던 마을은 통째로 사라졌다.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시간이 지나는 것만 해도 허무한데 아무 흔적도 없구나."

엄마는 얼음 속에 갇힌 물을 바라보며 연신 혼잣말을 하셨다. 저 물아래엔 엄마가 얘기하던 그렇게 달다는 샘물도 있고, 여름밤 뱃속을 채우던 달디단 복숭아 과수원도 있고, 겨우내 화롯불에 구워 먹던 밤나무도 있고, 더위를 식혀 수영하던 모래사장도 있었다.


"엄마, 갑자기 오고 싶었어요?"

"그래, 니 내려오면 한번 가봐야지 며칠 전부터 가보고 싶더라고."

엄마의 덤덤한 성격에 별 표현은 없었다.

"담번에 언니랑 오빠 내려오거든 다 같이 한번 오시더. 엄마의 역사를 보여줘야지."

오랜만에 고향에 왔지만 더 이상 고향이 아니었다. 이젠 엄마의 기억에만 존재할 고향이 이대로 아스라이 묻혀버리지 않게 그려봐야겠다, 옮겨내 봐야겠다. 엄마에게도 고향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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