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그래도

by 김커선

폴란드에서 히치하이킹, 참을성의 시험대

7월 햇살이 부서지던 날. 폴란드 크라쿠프를 떠나 체코 프라하로 향했지만 차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개인적 경험으로 폴란드는 히치하이킹이 가장 어려운 나라 중 하나였다. 한 자리에서 두세 시간을 버티는 건 예사였다. 잘못된 포인트에 섰거나, 내 인상이 마음에 안 들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차는 안 섰다.

그늘 하나 없는 도로변에 서 있자니 햇살에 피부가 따갑게 익었다. 차가 스쳐 지날 때마다 굉음이 귀를 울리고 매캐한 매연이 폐를 막았다. 겉보기에 히치하이커는 공짜 차를 노리며 빈둥대는 것 같아도, 그들 나름의 고충이 조금 아주 조금은 있었다. 세상 모든 삶이 그러하듯 말이다.

히치하이킹을 하다 보면 10~20킬로미터쯤 태워 주겠다는 운전자가 많았다. 보통은 엉뚱한 곳에 내려 발이 묶일까봐 사양했지만 폴란드에서는 달랐다. 차만 세워줘도 뭔가 해낸 것 같고 감사함에 눈물도 찔끔 날랑말랑 했다. 멀리 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태워만 줘도 땡큐. 폴란드의 도로는 히치하이커의 인내심을 시험하는데 도가 터 있었다.



길 위에서 만난 폴란드판 ‘사랑과 전쟁'

“징꾸이(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자동차 옮겨타기를 여러 번, 이번엔 검은 밴 한 대가 내 앞에 멈췄다. 역시나 장거리는 아니었지만 30~40분쯤은 갈 거리였다. 운전자는 삼십대로 얼굴이 동글동글 선함이 묻어 났다. 나는 또다시 징꾸이를 외치며 차에 올라탔다. 이름은 도리안, 청소용역 업체 사장님이었다. 뒷좌석엔 청소 도구가 가득했는데, 사업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살짝 웃으며 “그럭저럭 괜찮다”고 답했다.

한적한 국도를 달리던 도리안이 갑자기 손가락으로 내 쪽 창밖을 가리켰다.

“헤이, 저기 봐! 놀이동산이야.”

나는 고개를 위아래, 좌우로 열심히 돌려가며 찾았지만 벌써 차는 멀어지고 있었다. 성인 남자에게 놀이동산이라니 생뚱맞았다. 물론 내게도 야간운행이 끝나도록 놀이기구를 타며 신명을 바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멀미부터 치고 올라오지만.

“아, 너 아이 있구나!”

분명 또래 자녀가 있겠지 싶었다. 내 예리한 추리에 새삼 내가 놀랐다. 뿌듯한 얼굴로 도리안을 쳐다보는데, 그의 입꼬리가 심상치 않았다.

“응, 있지. 일곱 살 아들……”

아이 얘기가 나온 순간부터 분위기가 침울해졌다. 뭐지 싶을 때 도리안이 불쑥 물었다.

“넌 결혼했니?”

이러고 길바닥을 처돌아다니는데 했겠수?

“안 했으면 하지 마. 결혼, 그거 별로야. 진짜 별로야.”

말처럼 길어진 얼굴로 도리안은 자신의 사연을 풀기 시작했다. 이십대에 결혼해 아들 하나를 뒀지만 지금은 이혼 상태. 그의 이야기는 어디서 많이 듣던 듯한 기시감을 줬다. 바로 드라마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보는 이의 뒷목을 잡게 만들던 막장 스토리가, 지금 폴란드에서 현실로 재생 중이었다. 도리안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날따라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도리안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절대 보지 말아야 할 장면과 마주쳤다. 아내는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 무방비로 그 광경을 목격한 도리안은 다리에 힘이 풀리고 정신이 멍해졌다. 너무 놀란 나머지 화는커녕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런 꼴을 보고 도리안은 이혼했다. 폴란드에선 흔히 그렇듯 아들의 양육권은 전처에게 넘어갔다. 아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성장하길 바라며, 그는 함께 살던 집마저 전처에게 넘기고 단신으로 나왔다.

“뭐? 전처 잘못인데 양육권을 가져갔다고?”

나는 불합리함에 혀를 찼다.

“이게 폴란드야! 이게 폴란드라고!”

도리안의 목소리엔 울분이 실렸다.

도리안은 지금 작은 스튜디오에서 월세를 살았다. 청소업체를 운영해도 양육비를 보내고 나면 임대료를 내고 생활하기에도 빠듯했다. 그는 인상을 구기며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그 못된 여자가 내가 부치는 양육비를, 그 돈을 아들을 위해 쓰는지, 지를 위해 쓰는지… 내가,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어떻게 믿냐고!”

말까지 더듬거렸다. 내면의 응축된 한이란 게 있다면 이런 걸까. 돈을 버는 족족 원수 같은 전처에게 꼬박꼬박 보내야 하는데다, 끔찍이 아끼는 아들도 주말에야 겨우 볼 수 있다니. 듣는 나도 처지가 안쓰러웠다. 그의 울분이 충분히 이해됐다. ‘아이고, 난 못하리’ 하는 속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헤이 히치하이커, 혼자 가라구!

가까스로 진정하려는 도리안에게 위로 한마디쯤은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심각한 차 안 공기를 조금 밝게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살다보면 별별일이 생기나 봐-이건 별 일의 수준을 넘어섰다. 양육권을 왜 줬대? 다시 못 뺏어와?—변호사도 아니고 내가 운운할 말은 아니었다. 아들이 보고 싶겠네—당연한 걸 굳이. 몇 살까지 양육비 줘야 해?—눈치 없이 팝콘 들고 궁금증을 해결할 타이밍도 아니고. 결국 머릿속 짱구를 굴리다 굴리다 꺼낸 말은 결국 안 하니만 못한 질문이었다.

"넌 앞으로 다시 결혼할 생각이 없어?"

장고 끝에 악수라고, 심각하지 않은 척하려다 보니 심지어 내 말투는 명랑하기까지 했다. 도리안은 단호하게 외쳤다.

“네버, 에버, 절대로, 다시는 안 해!”

목소리엔 결기와 울분이 섞여 있었다. 배우자의 외도는 천재지변이나 큰 사고에 버금가는 충격이라 한다. 하물며 도리안은 현장을 직접 목격했으니. 그의 삶이 순식간에 부정당하는 고통을 겪은 건 당연했다.

“난 전처가 날 그렇게 배신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내 모든 것과 바꿔도 아깝지 않을 만큼 소중한 아들과 아내, 편안한 집. 그 행복이 계속될 줄 알았는데 지금 나한텐 아무것도 없어. 일이 끝나면 돌아갈 곳은 불 꺼진 원룸 하나뿐이야.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해진 거지?”

목소리는 한층 가라앉았고,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아까처럼 하나마나한 소리를 해 대느니 차라리 침묵이 나았다.

“넌 결혼 안 했지? 그건 운이 좋은 거야. 앞으로도 결혼 따위 할 필요 없어. 다른 사람에게서 행복을 얻으려 하지 마. 너 혼자 스스로의 행복을 좇으면 돼.”

천하 백수에다 얻어 탄 차로 길바닥을 떠도는 주제인 내가, 졸지에 사장님의 부러움을 사는 ‘운 좋은 사람’으로 변신했다. 결혼을 안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다고 어깨가 으쓱하거나 기쁘거나 그러진 않았다. 결혼의 기역자도 모르는 내가 대체 결혼생활이 뭔지 알 리가 있나. 한 것과 안 한 것의 차이를 짐작조차 못 하겠다. 나는 그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혼자 길바닥을 떠돌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행복을 구하지 말라는 도리안의 마지막 말을 곱씹다 불현듯 불교 초기 경전 숫타니파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만남이 깊어지면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사랑으로부터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동행이 있으면 쉬거나 가거나 섰거나

또는 여행하는 데도 항상 간섭을 받게 된다.

남들이 원치 않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그래도, 함께라면

한 시간 남짓의 짧은 동행은 금세 끝났다. 도리안은 운전석에서 내려 내 배낭을 들어주며 배웅했다. 함께 사진을 찍고, 내 길 위의 행운도 빌어주었다. 나 역시 그의 친절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나는 다시 한낮의 열기가 이글대는 도로 위에 섰다. 역시나 차는 좀처럼 서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한다. 자랑이든 상처든, 나를 알아주는 친구 앞에서 솔직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차마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라는 안심, 나를 판단하지 않으리라는 믿음, 혹은 그냥 흘러나오는 타이밍. 때때로 낯선 이 앞에서 더 깊은 고백을 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짧았지만 긴 여운이 남는 만남이었다. 웃는 낯이 선한 도리안이 차츰 마음의 평안을 찾기를 바랐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또 다른 사람을 통해 보듬어진다고들 하더라. 나는 숫타니파타를 되새기다가 그에게 진짜 필요할 구절 하나를 찾아냈다.

홀로 길바닥을 헤맬 만큼 운이 좋은 나는 아직 ‘함께’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래도 이 구절만큼은 도리안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다.

......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얻었다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리니,

기쁜 마음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그와 함께 가라.

........


"도리안, 그대 앞에 놓인 시간에 커다란 평안과 행운이 가득하기를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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