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신화의 힘><신화와 인생>
이 글은 류시화 작가의 글을 필사한 것입니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poet.ryushiva/photos/a.416815941756831/446079995497092/
신화 종교학의 거장 조셉 캠벨은 '천복을 따르라'라고 말한다. 천복(bliss, anand)은 하늘이 내려 주는 복이다. 캠벨에 의하면 천복은 가슴이 하는 말,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천복을 따르되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설령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문은 열릴 것이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그 일을 붙잡고 살라고 역설한다. 행복하겠다 싶으면 그 길로 나아가라, 전부를 원한다고 해도 신께서는 주실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신을 향해 한 걸음 내딛으면 신은 우리를 향해 열 걸음 다가선다는 것이 캠벨의 사상이다.
저명한 저널리스트 빌 모이어스와의 텔레비전 대담에서 캠벨은 한 에피소드를 전한다. 그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의 아이가 부모에게 무엇인가를 계속 요구했고 아버지는 그 요구를 계속 묵살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 주면 안 되느냐고 묻자 남자는 말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 적이 한 번도 없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다면 부자가 될 수 없었어." 이 말을 듣고 캠벨은 그 남자가 절대로 천복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담에서 캠벨은 말한다. "천복과는 무관하게 성공을 거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성공해서 사는 삶이 어떤 삶일지 한 번 생각해 보라. 평생 하고 싶은 은 일은 하나도 못 해 보고 사는 그 따분한 인생을. 나는 학생들에게 늘, 육신과 영혼이 가자는 대로 가라고 말한다. 일단 그런 느낌이 생기면 그 느낌에 머무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도 우리 삶을 방해하지 못한다."
천복을 붙잡으면 무엇이 어떻게 될지 아는 사람도 없고 가르쳐 줄 사람도 없다. 자신의 마음 밑바닥으로 그것을 인식할 도리밖에 없다. 천복을 발견하는 일은 스스로 갈고닦아야 하는 기술과 같다. 자신이 행복해하는 것을 따르면 돈이 있든 없든 간에 행복을 얻게 될 것이다. 돈을 따르면 돈을 잃을뿐더러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할 거야.'라고 말하고 그 신념을 고수한다면 무엇인가가 일어날 것이라고 캠벨은 <신화와 인생>에서 말한다. 설령 직업을 얻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삶을 얻기는 할 것이며, 매우 흥미로운 삶이 될 것이라고.
천복을 따를 때는 어떤 협박과 불길한 조언에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자신의 가치를 밀고 나가야 한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을 버려야 희열이 온다고 캠벨은 경험을 통해 말한다. 가슴의 목소리를 거부하면 다른 누군가의 종이 되는 것이라고. 내면의 부름을 거부할 경우, 일종의 말라붙음, 즉 삶의 감각이 상실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우리 안의 영혼은 자신이 원하는 모험이 끝내 거부되었음을 안다. 그것으로 인해 분노가 형성된다. 긍정적인 방식으로 경험하기를 거부하면 결국 부정적인 방식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모험할 준비가 되면 이전까지는 문이라곤 없었던 곳에서 문들이 열린다. 그러나 마음의 소리를 따른다고 천복이 쉽게 찾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캠벨은 신화를 빌어 설명한다. 어둡고 위험한 길을 통과해야만 마침내 목적지로 향하는 넓은 길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천복을 따르는 사람은 신화 속 영웅과 같다. 그는 실마리를 발견해 복잡한 미로를 헤쳐 나가야 한다. 이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 이유는 모르지만 어떤 시점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는 것이다. 그 존재를 믿기만 하면 시공을 초월한 안내자가 여행 과정의 도처에서 나타난다. 가슴의 부름에 응답했기 때문에 모든 무의식의 힘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마치 어떤 리듬을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영웅의 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방해물은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캠벨이 여러 번 언급하듯이 '나의 내면, 심연에 존재하고 잇는 용'이다. 이 동굴 속 용은 내면의 두려움과 욕망을 상징한다. 만약 "아니, 내가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 안에 갇힌 용이다. 모든 영웅이 경험하는 중요한 통과의례는 바로 두려움의 극복이며, 두려움을 극복해야 비로소 업적의 성취가 있다. 개인적인 한계를 넘는 고통은 곧 영혼의 성장에 따른 고통이다. 자기 한계의 지평을 넘고 드넓은 자각의 영역으로 건너가는 고통이다. 살면서도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 신화는 읽어 본 적이 없다고 캠벨은 못 박는다. 신화는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그 고통을 직면하고, 이겨내고, 다른 것으로 변용시킬 수 있는가를 가르칠 뿐, 고통이 없는 인생, 고통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인생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르러야 할 궁극적인 목적지는 우리 안에 있다. 용은 누구도 대신 죽여줄 수 없다. 내 안에 있기 때문에 오직 나만 죽일 수 있다. 괴물을 죽인다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을 죽인다는 것이다. 영웅은 잠을 자다가도 운명의 때가 되면 일어난다.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극복의 기술을 완성해야 하는 인간이며, 가슴 뛰지만 두려운 모험의 열쇠를 가진 사람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 삶의 모험을 진심으로 반길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영웅의 모험, 즉 살아 있음의 모험이다. 니체는 삶의 이유를 가진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고 했다.
영웅은 시련과 좌절을 겪지만 자기 안의 진리를 발견하고 임무를 완수해 집단에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영웅은 자기 삶을 자기보다 큰 것에 바친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캠벨은 해석한다. 우리 자신을 구하면 세상도 구원된다. 영웅이 보통 사람들과 다른 점은 개인적인 원한이나 절망, 그리고 복수로서의 삶이 아닌, 자연적인 방법으로 용감하면서도 아름답게 삶에 참가한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캠벨은 우리 모두에게 자기 내부에 있는 영웅을 발견하고 끄집어내는 영웅으로서의 삶을 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말한다. 이러한 과정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즉 우리 역시 영웅이 될 수 있다. 또 그는 말한다. 주저하지 말고 모험을 떠나 자신의 신화 속 영웅이 되라고.
세상의 종교들에서는 천복은 죽어서 천국에 가서야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묘사하지만 캠벨은 우리가 살아 있을 때도 천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천복을 따르는 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축복이라고. 가슴의 소리,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두려움이라는 용을 물리치고 자아실현에 도달하는 삶이 조셉 캠벨이 말하는 신화 속 영웅의 삶이다. 우리 모두가 모험을 떠나는 잠재된 영웅들이다. 모험을 계획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영웅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신화의 힘>에서 캠벨은 말한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 자체도 믿지 않는다. 개성은 신비로운 것이다. 개성은 우리의 운명이다. 사람은 다 삶의 경험에서 기쁨을 느끼는 나름의 방법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사람은 마땅히 그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꽃피우고, 그것과 사귀어야 한다."
류시화 작가가 쓴 글이다. 스스로가 작아 보이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랴 싶었던 날, 이 글을 봤다. 글을 읽고 나니 마치 쨍하도록 차갑고 투명하리만치 맑은 물에 머리를 헹군 듯했다. 이후 두고두고 보는데 볼 때마다 새롭고 볼 때마다 마음이 울린다. 아끼고 좋아하는 글이라 필사해봤다. from 이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