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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려워하는 것들

by 달리

눈을 뜨니 꿈이었다.


예쁜 것들이 많이 파는 가게들이 즐비했고, 내가 좋아하는 한적한 동네였다. 일행이 여러 명이었는데 일부는 그 거리를 만끽했고, 일부는 근처에서 열리는 집회에 간다고 했다. 나는 그 둘 중 어느 것도 놓칠 수 없었고 고를 수 없었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길거리에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즐겁게 놀고 있는 일행에겐 너희가 어떻게 이럴(사회 문제를 등질) 수 있냐고, 집회에 간 일행에겐 왜 나를 챙겨주지 않았냐고 화를 냈다. 그래 거기까지도 썩 봐줄만했다.


못난 나에 대한 실망을 남 탓하고 있는 나에게 더 화가 나서는 급기야 소지품을 길에 내던지기 시작했다. 가방, 옷 내 몸에 걸려있는 것들을 죄다 팽개쳤다. 그 와중에 카메라와 스마트폰이 들어있는 작은 가방은 폭신한 쪽으로 슬쩍 던졌다. 던지면서 생각했다. 하… 나란 인간은 화를 폭발하면서도 이런 걸 고려하는구나. 세상 찌질해.


그렇게 분노에 불타오르는 나를 놔두고 모두들 자기 갈 길을 갔다. 민망한 표정은 지었지만 그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현실세계였다면 진심으로 미안하지 않아도 사회적 자아들이 영혼 없는 사과를 했을 텐데. 그때 꿈이라는 걸 눈치챘어야 하는데.) 나는 절망과 분노, 외로움과 고립감에 둘러싸인 채 어느 길가에 서 있었다.


눈을 뜨니 꿈이었다.

‘아, 정말 다행이다.’

꿈은 잔인하게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정확히 보여줬다.


이런 꿈을 꾼 건 어제 서울역 지하도를 지나왔기 때문이다. 아주 잘 잘 정돈된 지하도에 있는 노숙자들을 보며, 노숙자는 양극화된 사회가 만든 피해자란 생각을 하면서도 최대한 그들과 멀리 떨어져 걷고 싶어 하는 나를 알아차리는 일이 괴롭다. 겉과 속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 사회정의를 아무리 외쳐도 결국 나의 한계는 여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런 나의 마음을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둘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할 것 같은 압박. 꿈이어서 다행이지만, 꿈이 아니기도 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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