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가 된 제도 밖 여성의 범죄는 그저 개인의 몫일까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유독 달라진 점이 있다. 영화나 책을 볼 때 여성의 삶을 다룬 작품에 좀 더 눈이 간다는 점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따른 어린이집 휴원 탓에 아기를 시댁에 맡기고 난 후, 무심코 열었던 넷플릭스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싱글 워킹맘의 이야기를 다룬 <미씽:사라지니 여자>를 보게 된 것도 그래서다. 워킹맘도 쉽지 않은데 남편과도 갈라선 설정이라니. 감정을 과도하게 이입하게 되는 건 아닐지 두려우면서도 영화에 이끌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영화는 초반부터 과연 싱글맘이자 워킹맘인 ‘지선(공효진 역)’의 일·가정 양립 분투를 그려 넣는다. 화장도 지우지 못한 채 피곤에 절어 잠들거나, 아기가 아파 잠시 병원에 다녀오겠다는 지선에게 “왜 돈을 받으면서 아기 사정까지 봐줘야 하냐. 이래서 애엄마랑은 일하기 싫다”라고 하는 그의 상사까지 나나 내 주변의 친구 얘기를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아기를 돌보지 못해 도우미 이모를 쓰는 일상도 조리원 동기의 사례를 보듯 자연스러웠다.
진짜 '한매'의 모습이 드러낸 한국사회의 민낯
하지만 영화 속 보모 ‘한매’의 행동은 자연스럽지 않았다. 아기와 병원에 다녀온 후 지선에게 연락도 없이 아기와 함께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지선은 한매와 아기의 행방을 찾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살고 있는 ‘한매’의 진짜 모습을 알아가게 된다.
매매혼으로 지체 장애가 있는 농촌의 한 중년 남성의 아내가 된 한매는 “한글 배워서 도망친다”는 이유로 집 안에 감금된 채 머리카락을 잘려야 했다. 딸 재인이 희귀병에 걸려 같은 유전자를 지닌 간이 필요했을 때에도 그의 남편과 시어머니는 “동네 시끄럽게 할 일 없다”, “죽으면 또 낳으면 된다”며 아이를 방치한다. 치료비를 벌기 위해 윤락 업소에서 일하고, 입원 동의하는 조건으로 성행위를 강요하는 남편을 두고도 강인했던 그녀는 아기가 죽은 후 마침내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분노는 아기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남편과, 병원에서 매몰차게 쫓아낸 뒤 자신의 아이를 입원시킨 부모를 향한다. 그 장본인은 다름 아닌 지선과 그의 전남편인 병원 의사였다. 윤락업소에서 알게 된 브로커에게 남편을 죽이는 대가로 지선의 아이를 납치해 그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제안하게 된 배경이다.
한매는 지선의 딸을 데리고 사라지지만, 결국 그를 죽이지 못한다. 지선의 딸에게서 재인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선이 한매를 찾아낸 뒤 아이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할 때, 그녀는 지선의 딸을 지선에게 안겨주고 바다에 몸을 던진다.
개인·사회적 안전망이 무너진 한매의 선택은 복수뿐
한매가 살아있었더라면 법정에서 살인 청탁, 아동 유괴 등의 혐의를 받았을 터다. 하지만 이런 표면만 보기에 그가 처한 상황은 절박하고도 참담했다. 가장 가까운 남편은 자신을 성적 도구로 대했으며, 한매 자신은 불법 체류자여서 아이 보호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채 아픈 아이를 안고 병원에서 쫓겨났다. 개인적 안전망인 가족도, 사회적 안전망인 결혼과 의료제도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기보다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감독은 영화 속에 일상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숱한 부조리를 욱여넣은 듯하다. 그리고 그 부조리는 워킹맘에 대한 사회적 시선, 불가피한 윤락 업소 진입, 매매혼, 여성을 성과 출산의 도구로 대하는 태도 등 여성으로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사건사고와 맞물려 있다. 이 과정에서 불편했던 건 내가 감정 이입했던 지선조차 부조리를 몸소 겪은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는 점이다. 워킹맘인 그녀는 일과 이혼조정, 경찰과 함께 아이를 찾는 모든 과정에서 각 과업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질타를 받지만, 애매하게 한국의 결혼제도의 주변에 머물렀던 한매에게는 재인이 누워있어야 할 병상을 빼앗은 장본인이었다.
한매가 바다에 몸을 던졌을 때, 그를 살리려고 함께 바다에 뛰어든 지선은 어쩌면 그랬던 자신을 반성하고 가해와 피해의 연쇄를 끊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선과 한매가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퍽 여운이 남았다.
다만 이런 여성의 연대가 '모성애'를 접점으로 이뤄지는 점은 다소 아쉬워 보였다. 피해자이자 가해자이기도 한 여성의 신분은 아이가 있는 상태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주제를 또렷하게 하기 위해서인지, 한매나 지선의 남편 등 영화 속 남성이 일관되게 무심한 캐릭터인 점도 약간 한계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 주연 위주의 관행을 뚫고 두 명의 여주인공이 호흡을 맞춘 점, 스릴러라는 외피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으려 한 점 등이 더 크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