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잃은 엄마가 찐 ‘배드 맘스’였다니

엄마들의 상실과 방황, 회복과 연대 과정 그린 영화 <배드 맘스>

by 안녕하세요

심오한 모녀관계 본질은 후속작 <배드 맘스 크리스마스>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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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엄마는 계모인가 봐.”


결혼하기 전, 엄마와 같이 살 때 출근하는 나의 아침을 번번이 차려주지 못한다면서 엄마가 습관처럼 내게 한 말이다. 무심한 나는 그 말에 크게 대꾸하지 않았다. 그렇게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하면서 집안일하는 게 허투루 보기에도 간단하지가 않은 데다 엄마는 타고난 저녁형 인간이었다. 이런저런 노력까지 합하면 삼각김밥이 여러모로 나을 때도 있었는데, 그걸 가지고도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는 엄마였다.


2016년 개봉한 존 루카스 감독의 영화 ‘배드 맘스(Bad Moms)’에는 우리 엄마 같은 등장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일도 하고 살림도 하고 육아도 하면서, 어떤 영역의 사소한 미션을 해결하지 못해 자괴감을 느끼는 군상이 이들이다. 주인공 에이미는 이런 여러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해 자책하다, 뭇여성과 ‘몸캠’을 찍는 게 왜 문제냐고 항변하는 남편과 한 바탕 싸운 뒤로는 직장 구성원, 아내, 엄마로서의 모든 역할을 놔버리기로 결심한다.


그는 더 이상 정규직도 아닌데 일감을 몰아주는 회사에 헌신하지 않고, 아이들과 남편의 끼니를 챙겨주지 않으며, 불가피한 아이들의 끼니는 패스트푸드로 대체한다. 아이들을 데려다주면서 만난 학부모 회장은 그런 그가 자신에게 ‘시비 건다’고 생각하지만, 비슷한 고충을 털어놓으며 똘똘 뭉친 에이미와 그 친구들의 일탈 행보를 막진 못한다.

술집에서 친구가 된 이들은 마트를 털고 클럽을 가는 등 일탈 행보를 이어간다.


에이미와 그 친구들의 일탈은 자신의 맡은 일을 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완벽한 주방의 일꾼’이 되라는 푯말이 붙은 마트에서 세제를 바닥에 뿌리는 등 난동을 부리고, 클럽 한 번 못 가본 에이미를 위해 그 친구들은 기꺼이 함께 클럽으로 향해 남성들을 적극적으로 유혹한다. 심지어 에이미는 학교에서 평소에 눈여겨봐 왔던 ‘돌싱남’ 학부모를 만나 러브라인을 만들고, 이 남자는 에이미 남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들의 행보는 미국식 유머와 뒤섞여 다소 낯설고 불편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미국식 B급 유머를 즐기는 나로서는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관계에서의 갈등을 겪다 어쭙잖게 갈등을 봉합한 뒤 원가족으로 돌아오는 전개보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일탈의 목적이 감정을 분출한 뒤 자신의 제 역할로 돌아오는 데 있다면, 다시 엄마의 역할로 돌아가되 자신을 잃지 않게 됐다는 점에서 일탈은 긍정적 측면이 더 크게 느껴졌다.


코미디 장르답게 영화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에이미는 ‘완벽한 엄마’이길 강조하는 기존 학부모 클럽 회장의 기조에 맞서 ‘나쁜 엄마’이기를 자처하고, 자신처럼 부족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싶은 엄마들의 표심을 얻는 데 성공한다. 이들 학부모는 회장 선거를 위해 모인 자리에서 부족한 자신의 행적에 대해 털어놓는다. “3일 동안 아이 목욕을 하지 않은 적이 있어요.”, “아이와 함께 패스트푸드를 먹어요. 그게 얼마나 맛있는데요.”, “아이 시험기간을 앞두고 놀러 갔어요.” 등등.


'모성 신화'는 엄마나 아내로서의 역할을 완벽히 해내야 한다는 강박을 여성에게 심어줬지만, 최소한 육아의 영역에서만큼은 엄마 자신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엄마의 불행이 온전히 아이에게 전해지고, 반대로 행복 역시 그대로 아이에게 전이되는 경험을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엄마가 부족하게나마 자신을 둘러싼 역할을 해내고 그 여백의 공간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그로써 충분한다고 생각한다. 가족의 핵심인 엄마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인 '배드 맘스'는 반어적으로 '굿 맘스'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배드 맘스'의 진짜 뜻은 자신을 잃고 역할에 함몰된 엄마를 뜻할지도 모른다. '엄마'라는 직업에는 정년이 따로 없으므로, 자신에게 맞게 역할을 조정해 가며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는 게 바로 '굿 맘스'에 이르는 길 아닐까. 그 과정이 마트를 털거나, 클럽을 가거나 싱글남을 유혹하거나 하는 방식일 필요는 굳이 없더라도 말이다.


엄마 얘기로 다시 돌아가면, 우리 엄마는 이제 나를 만나서 더 이상 밥을 차려주지 않는다. 대신 집이 아닌 밖에서 만나 각자의 집게로, 입맛에 맞는 정도로만 고기를 구워서 각자 먹는다. 더 이상 고기가 너무 익었네 혹은 너무 덜 익었네 하는 내용으로 불필요하게 언쟁하지 않는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엄마는 자신의 욕구에 집중해 자신에게 충실할 때 '굿 맘스'가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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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원작이 흥행해서 속편도 나왔다. '배드 맘스'의 엄마들이 크리스마스에 딸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렸는데, 코미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아동발달이나 심리학 차원에서 깊이 있는 내용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엄마가 된 딸들이 노년의 엄마에게 정서적으로 독립해 새로운 관계를 맺는 과정을 유쾌하고 훈훈하게 담았다. 물론 미국식 B급 유머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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