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인, 이성애, 남성주의 등 모든 '비주류'를 감싸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저서 <페미니즘의 도전>은 여성주의뿐만 아니라 장애, 지역, 연령에 따라 발생하는 차별과 격차를 약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책이다. 자신의 소개에서도 밝혔듯 '궤도 밖에서' 우리 사회의 통념, 기존의 논쟁 구도를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2005년 이전에 여러 매체에서 기고한 칼럼을 모아 만들었는데, 독자의 반응이 좋아 2013년에 개정 증보판이 나왔다.
미투 관련해서 인식의 한계에 부딪혀서 페미니즘 관련 책을 찾다가, 네이버 '책'에서 상위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어 선택한 책이다. 페미니즘은 다소 어렵거나 급진적인 주장을 할 것 같은 편견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이런 선입견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기도 했다.
먼저 다소 어려운 측면은 분명히 있다. 장애, 지역, 연령, 성별 차원에서 기존에 형성돼 왔던 담론에 문제제기를 하는 챕터가 대부분인데, 각 영역의 지배 담론을 제대로 알지 못하다 보니 여기에 문제 제기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와 닿지 않았던 것 같다. 또 문장과 문장이 주장과 근거로 이뤄진 관계도 있지만, 주장과 주장으로 연결되는 측면도 있어 역시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입력이 상당하다. 주제 자체가 논쟁적이기도 하지만, 이 논쟁 자체를 전복할 만큼 깊이 있는 성찰을 바탕으로 또 다른 문제제기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협상, 생존, 공존을 위한 운동이다. 여성운동은 남자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남성의 세계관과 경험만을 보편적인 인간의 역사로 만드는 힘을 조금 상대화시키다는 것이다. (중략) 여성운동은 여성이 '공적 영역'에 진출하는 것을 넘어, 남성이 '사적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정신 차려야 할' 집단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남성들이 집에서 노동하지 않는 한, 여성에게 사회 진출은 이중의 중노동만을 의미할 뿐이다.
정희진 스타일의 페미니즘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잘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언론에 주로 등장하는 극단적인 사례는, 현재 사회가 페미니즘을 가장 자극적으로 다루는 예였나 보다.
가부장제 사회가 작동할 수 있는 근본적인 구조 중의 하나는 남성이 여성의 친밀성 능력과 감정 노동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중략) 전통적으로 성과 사랑의 주체는 남성이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은 여성이 담당한다. 여성이 노동을 그만두는 순간 대부분의 관계도 끝난다. 이것이 성별 분업인데, 남성들은 주로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사적'인 영역이라고 간주되는 가족이나 연애 관계에서 관계성을 경시 혹은 부정함으로써 여성의 육체노동, 감정 노동, 정신노동에 무임승차한다.
이건 나의 개인적인 고민이다. 나는 가정에서 돌봄, 챙김 등의 의무를 느끼는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렇게 타인을 돌보며 챙기는 성격이 아니라 한계를 느낄 때가 많았다. 이 서술은 가정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젠더에 부여된 역할이라는 점을 환기함으로써 조금은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줬다.
여성 노인 문제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나이 듦의 의미를 살펴보는 과정의 결과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중략) 한국사회의 학생운동은 정치경제학적 문제에 기초한 사회운동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선민적 운동이다. "청년이 서야 조국이 선다","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는 식의 젊음을 특권화한 운동이다. 사회 주체인 젊은이는 조국, 민중을 대상화할 수 있는 권력이 있고 이들만이 나라를 구한다.
학생운동 관련 활동을 했을 때 들었던 생각인데, 선민에 기초한 운동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를 비판적으로 돌아볼 기회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대학 진학률이 70%가 넘고, 초년 시절부터 취업 경쟁에 내몰리는 청년들이 선민이라는 인식은 이제 와서 무의미해 보인다.
영화 <집으로>는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즉 가장 보수적인 방식으로 대한민국 관객의 정서에 호소한다. <집으로>는 남녀 주인공의 성역할과 연령주의에 철저히 의지하고 있는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이 할아버지-손자, 할머니-손녀, 할아버지-손녀였다면 이 영화의 감동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흔히 느끼는 휴머니즘의 정서 조차 성별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대목인데, 나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부분이라 놀랐다.
전반적으로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시각이나 여성 중심적인 시각에 의문이나 문제를 제기하는데, 이런 문제제기가 엄정한 논리적 과정을 거쳐 대안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는 여기서 다뤄지는 논의들이 불완전하다고도 볼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이 불완전함이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이나 상상력을 자극한데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논리적으로 무결하고 촘촘하게 짜인 글만이 좋은 글은 아니라는 점은, 과거에 한참 언론사 시험을 보러 다닐 때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가부장제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일단 똥은 피하자'와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는 인식이 공존했던 것 같다. 이른바 '나쁜 남자'와는 친구로도 지내지 않는 등 최대한 거리를 두되, 취업시장이나 회사에서의 남성 동료 등 일상의 남자들이 전해 주는 남성 위주의 시각은 웬만하면 예민해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곤 했다.
가부장제를 주축으로 하는 결혼 제도에 편입하고 임신, 출산을 한 이후에는 회사에서의 미묘한 성희롱이나 성차별에 무뎌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부족한 성인지 감수성을 드러내는 상사나 남성 동료의 발언에도 예전처럼 생각이 많아지거나 상처 받지 않고, 조금 더 편하게 넘길 수 있게 됐다. 어차피 바뀔 건 없고 나만 예민한 사람 취급받을 바에야 그냥 침묵하되 나중에 정당하게 부당한 젠더 문제에 정식으로 문제 제기할 수 있는 내공을 기르자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개복치 멘털을 가진 내가 어떤 한 부분이라도 무던해졌으니 장점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침묵하고 동조했을 때 관계를 더 수월하게 맺을 수 있으니 타협한 거라고 해야 할까.
여러 면에서 이 책은 내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책이었다. 내가 여자라서 느낀 감정이 그저 개인의 것만은 아닌가 싶어 고민하고, 돌봄이나 가사 등 전통적인 여성 영역에 있는 의무에 최선을 다하지 못해 죄책감을 갖고 있었는데, 이 책은 나의 그런 감정조차 개인의 것만은 아니라고 다독여 주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