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르디플로 6월호 ‘권력을 휘어잡고 세상을 거머쥐겠다고?'
김복동 할머니의 생전 활동을 담은 영화 <김복동>를 떠올리면 한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할머니가 청중이 빼곡하게 앉은 대강당 무대에 서서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그 뒷모습을 담은 화면이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그 청중의 눈이 두려울 법도 했을 텐데, 할머니의 뒷모습은 왜소한 체구와 달리 강인해 보였다. 그리고 그 강인함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 이질감이 뭔지 한참을 생각했다. 막연하게 그렸던 할머니의 모습은 금방이라서 부서질 것처럼 약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아 보이는 데서 오는 감정이었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입었던 피해가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며, 이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 정당하다는 확신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 할머니를 연약하고 무력하게만 봤던 건 내 편견이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6월호에 실린 정치학자 프레데릭 토마의 글 ‘권력을 휘어잡고 세상을 거머쥐겠다고?’를
읽고, 김복동 할머니의 그 뒷모습이 생각났다. 구호 대상을 무력한 피해자로보고 있었던 편견이 비단 나만의 시선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시선이 자연재해나 전쟁 같은 끔찍한 일을 겪은 피해 당사자들의 회복을 더디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
기사에 인용된 설문조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재난 피해자들에 대해 무기력하고 수동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2018년 이라크와 레바논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이런 국제원조의 부정적 평가에 힘을 실었다. 응답자의 80% 이상이 ‘국제원조가 자국의 자립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으며, 상당수가 ‘피해자들의 의견은 무시한 채 구호 활동을 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재난 피해자들은 무기력하고 수동적’이라는 편견이 만연하다. 물론 2004년 국제적십자연맹 마르쿠 니스칼라 사무총장은 “재난 피해자는 무기력하므로, 인도주의 구호활동이 절대적이라는 구태의연한 믿음을 버려야 한다. 재난 피해자와 그들의 위기극복 능력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에 ‘해결사’를 자처하는 외국 구호단체와 복잡한 국제관계는 피해자들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 결과 피해자들은 위기 극복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잃게 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사실’을 소개하는 대목도 인상 깊었다.
“인도주의 활동단체는 후원금을 받거나 언론이나 정책 결정자들과 접촉하기 쉽기 때문에 권력을 행사하기도 쉽다는 사실이다.(12) 물론 필리핀 NGO, EcoWEB(Ecosystems Work for Essential Benefits, Inc.)의 레지나 살바도르 안테키사 사무총장은 이스탄불 인도주의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구호 활동의 현지화’가 실현되려면, 무엇보다 권력 관계의 부당함과 불평등,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는 요원해 보인다.”
국제구호단체와 마찬가지로, 시민사회단체도 언론이나 정책결정자들에게 자신을 뜻을 전달하면서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좀 다른 결의 문제일 수 있겠지만, 시민사회단체활동을 통해 축적한 언론, 정책결정자들의 인맥으로 자신의 야망을 구체화하는 모습도 봤다. 기사대로라면 구호단체나 시민사회단체가 보여온 잘못된 모습이 한 개인이나 단체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인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개인이나 단체에 화살을 돌리기보다 단체의 개선이나 혁신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다.
프레테릭 토마의 글은 이렇듯 선의를 내세운 국제구호단체가 구조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복잡한 국제관계에 얽히면서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국제구호단체는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선출된 권력’이 된 한 시민사회단체의 고위 간부가 화두에 올랐다. 그가 이 글을 읽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6월호에 실린 정치학자 프레데릭 토마의 글 ‘권력을 휘어잡고 세상을 거머쥐겠다고?’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08
[참고문헌]
1. ‘김복동’, 송원근 감독, 엣나인필름 ,2019
2. 프레데릭 토마, ‘권력을 휘어잡고 세상을 거머쥐겠다고?’, 르몽드 디플로티크 6월호, 2020.
3. 최일영, ‘이용수 할머니 “증오·상처만 가르치는 수요집회 불참”’, 국민일보 5월 8일자 14면, 2020.
4.윤미향 비례대표 당선 정보(2020.07.07. 현재)
http://info.nec.go.kr/search/searchCandidate.xhtml?searchKeyword=%EC%9C%A4%EB%AF%B8%ED%96%A5
5.조기원, ‘‘정의연’ 논란 기회 삼아…일본 우익 언론 “소녀상 철거를”‘,한겨레신문 05월 20일자 1면, 2020.
6.https://brunch.co.kr/@orintee/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