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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블 세계의 지평을 넓힌 '블랙팬서'

제한적 위치에 놓인 민족의 자원 분배 문제를 다루다

by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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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팬서>는 미국에서 제한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한 민족과, 그 민족 집단의 일부가 자신이 지닌 희소성 있는 자원을 분배하는 방식을 그린 영화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그의 정체성에 맞게 '하여간 미국인은 마음에 안 들어', '총 쓰는 건 미개해' 등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미국에 대한 정서를 어느 정도 노출시키는 듯했다. 킬 몽거가 악역이 된 이유도 미국 내 흑인의 제한적인 역할과 관련이 있었으므로, 이 영화로 마블은 조금 더 다채로운 세계관을 포용한다는 평가를 받게 됐을 것 같다.


이 같은 다양성을 기저에 깔아 둔 채, 영화는 주인공 블랙팬서의 정통성 확보에 집중함으로써 주제를 확실하게 한다. 마블에서 각 영웅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영화는 대체로 영웅의 일대기를 설명하는 식이다. 그러니 고귀한 혈통, 시련과 구원, 극복과 왕위 쟁탈 과정으로 이어지는 이번 영화의 주제 범위는 불가피했을 것이다. 미국 전역의 흑백 갈등보다 와칸대 내 권력 승계로 시야를 좁힌 이유가 여기에 있다.


티찰라가 자원 분배의 방향을 와칸다의 외부까지 확장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나는 그 방향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자원을 보호하고 최대한 방어 전략을 펼치는 일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지 않은 개인이나 집단이 쓸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다. 중동이 보여주듯, 많은 자원이 반드시 국가를 부유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킬 몽거가 살던 지역에 원조 기관을 설립하고, 국제 사회에서 와칸다의 역할을 하겠다는 선언 정도가 객관적 현실의 반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티찰라의 결정이 미국 시각에 충실하다는 주장에 다소 동의하기 어렵다.


여성 캐릭터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이 영화에 나오는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주인공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위기를 타개해나간다. 블랙 팬서의 어머니와 나키아는 와칸다 내홍에 휩싸일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한 부족을 찾아가고, 블랙 팬서의 여동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왕국의 싱크탱크에서 자신의 오빠를 적극적으로 조력한다. 오코에 역시 개인감정보다 조국의 안위를 생각하는 인물로, 킬 몽거가 왕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자 즉시 전투태세로 돌입한다. 몇 달 전에 개봉한 킹스맨에서 여자 캐릭터가 지녔던 한계를 돌이켜보면 꽤나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스파이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일부 캐릭터의 입체성이 줄어든 점은 다소 아쉬웠다. 적인지 아군인지 모호했던 나키아나 CIA 요원 로스의 역할이 와카다 국가가 위기를 맞은 후 급작스럽게 아군으로 확정된 점이 그렇다. 이후 악역의 비중이 킬 몽거에 실렸다고는 하지만, 와칸다나 미국에 지극히 냉소적이고 급진적인 입장을 보였던 그가 '노예 대신 바다에 뛰어내리기를 선택한' 조상들처럼 죽음을 택한 대목은 캐릭터에 대한 설득력이 낮게 느껴졌다.




한정된 자원을 나는 어떻게 분배하고 있나 돌이켜보기도 했다. 블랙팬서의 아버지는 그 지원을 자신의 왕국을 지키기 위해 써야 한다고 봤고, 블랙팬서는 왕국 외부에 있는 자신의 민족을 지키기 위해 첫 발을 디뎠다. 대체로 전자의 태세를 갖추었던 내 입장에서는 최소한 현상 유지나 내부의 평안만이 답이 아닐 수는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스스로를 지킬 만한 힘과 자원이 있는데, 내 울타리 바깥 편의 사랑하는 누군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을 때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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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소소한 킬링포인트도 있다.


1. 셜록은 어디다 버리고 왓슨 씨 혼자 부산에(...) 싸우셨나요


2. 연출상의 애매한 지점


1)흑인 감독이 최종 감수한 흑인->한국어, 한국인-> 한국어 내레이션은 모국어도 아닌 것이, 외국어도 아닌 것이... 비슷한 이유로 왜 격투 장면이 부산이어야 했는지는 의문.

2)킬몽거가 왕이 된 후 부족을 이끌고 전투 지시를 내리는데, 입은 옷은 카디건...?

흑인 전통 VS 현대도 아닌, 미국 VS 아프리카도 아닌 모호한 앙상블.


3. '채식만 한다'던 고릴라 부족 시선강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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