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복동>의 할머니, 피해자에서 주체로 거듭나다
반일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일본이 한국의 과거사를 문제삼아 무역보복을 하면서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고, 일본 현지의 소녀상 전시를 중단시키는 등 한국의 일본브랜드 불매운동에 맞불을 놓는 모양새다. 지난 1일 시사회로 본 영화 <김복동>은 이 첨예한 갈등을 불러온 원인인 전시 상태에서의 성노예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일본에서 성노예로 청춘을 소진시켰던 영화 속 주인공인 김복동 할머니는 90이 넘는 나이에도 지치지 않고 자신이 당했던 일을 국제사회에 고발하는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고, 같은 일을 겪은 할머니들이 20분밖에 살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조금은 지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결장암에 걸리고 나서도 싸움을 이어나갔다.
그의 추진력에 대해 한 시민활동가는, 일본이 저지른 잘못을 자신이 반드시 바로잡고야 말겠다는 사명감이 그를 '투사'로 만들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나비기금'을 설립해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돕고, 일본에서 차별받는 재일조선학교를 방문해 직접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인권운동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간다. 자신의 고통이 스스로의 잘못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거나와, 자신만의 상처도 아니라는 생각이 있지 않고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본 극우 세력의 비방과 달리 그가 젊은 시절 느낀 고통은 인권을 논할 수 없는 전쟁의 특수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또 여성이기에 당할 수밖에 없었던 치욕이었다.
성노예 피해자에서 인권 운동가로 거듭나다
김복동 할머니는 다른 어떤 분들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려 나간다. 아픈 기억을 잊기 위해 과거를 들추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선택을 했다. 인간의 존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고,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는 다른 이들이 비슷한 일을 겪지 않기 위해 두 팔 걷고 나섰다. 심리적으론 자신이 받은 상처에 갇히기보다 더 나은 가치를 찾아 나선 '승화'에 가깝다. 그 결과 할머니는 이 시대를 사는 어린 소녀와도, 지구 건너편에서 전시 상황으로 고통받는 여성과도 인연을 맺게 됐다. 할머니의 삶의 주인이 아픈 상처에 압도되지 않도록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다.
영화 속에 등하는 대학생, 시민단체는 다정한 이웃을 대하듯 할머니를 대하고, 할머니 역시 딸이나 친척 대하듯 그들을 대한다. 그리고 이들과 대조적으로 일본은 할머니들에게 사과하기보다 돈을 건네고, 한 대통령은 일본에 용서를 촉구하기보다 '화해 치유 재단'을 설립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화해를 구하는 일을 추진한다.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에게 힘이 돼 주는 동안, 가해자는 계속해서 자신이 가해한 사실을 외면하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리뷰를 쓰기 쉽지 않았다. 감히 내가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지, 또 그의 진심을 곡해해 그의 진실과 무관한 글을 쓰게 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러웠다. 어쩌면 이 문제를 직시할 만큼의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지금처럼 외면했던 오랜 시간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목소리에 응답하고 힘이라도 보태는 게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글을 매듭짓는 순간, 영화를 본 후 무거운 돌덩이를 얹은 것 같은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