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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지독한 회의감은 귀여움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아기 150일 키우고 돌이켜보는, 냉소적 엄마의 썰

by 안녕하세요


작은 생명과 '가족'의 관계를 맺게 된 지 150일이 다 돼 간다. 잠도 못 자면서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100일 이전의 시간도 나는 양가와 남편의 도움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목욕하는 법, 수유하는 법, 기저귀 가는 법, 이유식 만들기 등 육아로 인한 과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었다. 항생제를 먹은 탓에 모유를 끊고 분유로 갈아탈 때도 아기는 그 흔한 투정 하나 부리지 않고 잘 적응해 줬다. 심지어 100일이 되기 전에 밤에 깨지 않고 통잠을 자기까지 했다. 예민한 아기와 고립무원처럼 육아하는 엄마들에 비하면 정말 수월한 편이지만, 그럼에도 가끔씩 드는 먹먹한 마음의 정체를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불가역적이다. 그러니까 한 번 자신의 아이를 낳으면, 아이를 낳은 사람은 평생 그 아이의 부모로 살아가야 한다.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이 사실이 나를 옥죄는 굴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사는 일상은 혼자일 때와 전혀 다른 삶의 방식과 관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먹고 자고 싸는, 이른바 기본 욕구를 대신 해결해주는 시기를 지나면 아이와 놀아주고 교육하면서 관계를 만들어가는 시간을 보내게 될 테다. 이렇게 되면 엄마의 집이나 직장, 인간관계는 자신의 취향이나 기호보다 아이의 편의에 맞춰 정해지게 된다. 어린이집이 가깝지 않은 집은 이사 갈 후보지에서 제외되고, 직장 역시 퇴근이 이르거나 일정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곳 위주로 생각하게 된다. 모바일 메신저의 대화 목록도 미혼일 때 즐겼던 음악, 책 등의 취미보다 육아정보를 나누는 조리원 동기 방이나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의 대화가 항상 상위에 올라와 있다. 먹고살고 즐기는 삶의 모든 영역이 아이에게 맞춰지게 된다는 의미다. 아이와 둘만 있는 시간이 숨 막혀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기기라도 할 때면, 아이와의 시간을 위해 자신만의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누군가에게 항상 죄스럽고 빚진 마음을 가져야 하는 점도 내 성미와 맞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게 전부인데, 처음엔 쉬웠던 이 결정이 어느덧 크고 작은 선택과 맞물려 더 이상 아기를 낳기 이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아이에 대한 애정은 어느 정도 자기 합리화와 매몰비용을 치열하게 셈한 결과이기도 할까. 자신이 아기를 위해 이만큼 포기했으니 아이를 사랑하지 않으면 내 삶이 무의미해질 것 같은 마음 말이다. 물론 이런 심정이 애정의 전부라고 믿고 싶지 않다. 아기가 내게 주는 사랑은 순수하고 온전하며, 때론 강한 삶의 의지도 느끼게 한다. 누군가를 위해 자기 것을 내놓는 일은 퍽 어려운데, 아이와의 관계로 이 과정을 배우고 조금 더 나은 나로 성장하는 것도 같다. 그리고 매우 자주, 회의감은 아이의 미소와 귀여운 몸짓 하나로 쉽게 잊히곤 한다. 감히 내가 사랑의 본질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면, 이런 어려움과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아이 키우는 일상을 선택하는 마음이 그 속성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조금 더 힘을 빼고 현재에 집중할 수밖에 없나 보다. 아이가 살 평생의 시간 중 나는 고작 150일을 함께 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온전하게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시기는 당장은 3년, 그 이후에는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라고 한다. 그때가 지나면, 아기가 어렸을 때 내 품에 착 달라붙어 나의 모든 관심을 바랐던 '떡 아기' 시절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힘 빼고 말하자면 아기를 키우는 시간에 나를 위해 온전히 투자했더라도, 쉽게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성격상 대단한 성취를 얻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럴 바에야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내 아이의 대책 없는 귀여움 속에 폭력적으로 끌려가는 편이, 좀 더 풍성한 인생을 사는 실마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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