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결속이 노력을 이끌다
대학 시절, 자주 활동하는 동호회의 정모에 참가한 적이 있다. 다양한 직업군이 모여 문화예술 분야의 주제로 자유로운 얘기를 나누는 자리였는데, 그 날은 유독 분위기가 좋아 밤새 술을 마셨던 걸로 기억한다. 다들 술기운이 올라 조금씩 자기 속내를 드러내는 순간이 왔다. 하지만 나는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 건 내가 상처 받을 수 있는 행위이기에, 나를 드러내지 않아 평가받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고 그때는 믿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서야 이런 내 성향이야말로 상처 받고 싶지 않아 하는 이른바 '방어 기제'가 높은 유형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생각해보면 이런 성향은 내 일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보험에 가입할 때 손실을 최소화할 목적으로 최소한의 필요한 보장으로 가입한다. 짜거나 단 음식을 피하고 규칙적인 운동으로 건강 관리에 힘쓴다. 이 모든 행동이 상처나 손해, 손실 등을 최소화하고 싶는 본능에서 나온 습관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나의 성향은 최근 들어 위협을 받고 있다. 결혼이라는 관계 형태가 주는 구성원 사이의 가까운 거리 때문이다. 일상을 함께 하면서 개인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 관계는, 거리가 가까운 만큼 상처도 큰 사이일 수밖에 없다. 평소처럼 상처와 같은 마음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거리를 두는 행위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나로서는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해 마음을 열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 보니 역설적으로 친밀한 인간관계를 위한 기본 원칙에 다다르게 됐다. 내가 마음을 열고 상대를 대하는 만큼 상대 역시 나에게 마음을 연다는 원칙이 그것이다.
심리학에서는 결혼을 원가족에서 받은 상처를 대물림하지 않고 끊을 수 있는 보루로 본다. 결혼은 기존의 성향을 지닌 내게 위협적인 생활 방식이면서도, 동시에 변화를 원치 않는 내가 변할 수 있는 마지막 공동체와 같다. 누구든지 부모에게 상처를 받지만, 이를 배우자와 아이들에게 투사하는 건 결국 당사자의 몫이다. 한 개인이 변화할 수 있는 결정적인 관계가 결혼일 수 있는 이유다.
모든 사람이 결혼의 장점으로 이런 이유를 꼽진 않을 것이다. 부모에게 독립해 자신만의 생활을 형성해 온 개인이 또 다른 누군가와 사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혼 과정에서 맞닥뜨릴 현실적인 어려움도 무시할 수 없는 조건이다. 하지만 자신의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이를 극복할 관계가 필요하다면, 그리고 그 사람과 한 공간에서 일상적으로 그 과정을 공유하고 싶다면 결혼이라는 종착지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