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검사 저자의 <검사 내전>, 법의 본질과 범죄의 풍경을 그리다
현직 검사의 에세이집인 '검사 내전'을 봤다. 아기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치우는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접속한 넷플릭스에서, 왠지 모르게 검찰 관련 영화만 연이어 볼 때쯤이었다. '범죄와의 전쟁', '더 킹' 등 영화에 나온 검찰의 면면은 권력의 정점에 다다르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군상이 대부분이었다. 권력을 쟁취할 수만 있다면 불법도 마다하지 않을 것 같은 검사 개인의 이미지가 검찰 전반으로 굳어지던 차였다. 이 책의 소개글은 꽤 인상적이다.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란다. 대한민국 삼권 중 한 축을 맡고 있는 그들의 직장 생활이 궁금했다.
검사의 일상은 세 번째 챕터 '검사의 사생활'에 가장 자세하게 나온다. 상사의 부하 관리를 과시하는 자리에 나가지 않아도 검사 생활에 큰 문제없었다든가, 상사에 대한 아부 일색이었던 폭탄사에 어깃장을 놨다든가 하는 에피소드는 검찰 내 상하 관계가 유연한 듯한 느낌을 받게 해 인상적이었다. 그 외에도 좁고 빛이 들지 않는 사무실에서 '토방에 사는 생쥐'처럼 일했다는 비유는 어쩐지 살면서 한 번은 마주했을 법한 허름한 일터의 풍경 같아 친밀감이 들었다.
이런 생활의 곤란함을 딛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검사는 결과적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게 된다. 저자는 대부분의 평검사가 권력의 핵심에 다가가기보다 자신의 주어진 본분에 최선을 다 하며, 대한민국이라는 여객선의 나사못으로 사는 이들이라고 말한다. 이런 태도의 검사는 아마도 다른 사람들을 죽이거나 사기를 쳐서 만나게 된 이들의 죄목을 불편부당하게 밝히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실현된 권선징악의 가치는 우리가 이 나라에서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만들 것이다.
'형사처벌 공화국','대통령 공화국' 다 맞는 말이지만...
다만 그 조직이 외적으로 갖는 영향력에 대해선 다소 평가 절하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저자는 한국이 '검찰공화국'이 아닌 '대통령 공화국' 또는 '형사처벌 공화국'이라고 했다. 검찰의 인사권을 쥐고 흔드는 권력이 검찰의 동력이며, 법으로 모든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사회에 팽배해 있다는 주장이다. 후자의 경우 일리가 있었으나 전자에 대해선 의문이 들었다. 대통령과 정치인에게 많은 힘을 실어주는 정치 제도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이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것도 사법권을 가진 검찰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른바 '라인'을 탄 뒤 유력 후보에게 유리한 수사를 기획하고, 정권 초기에 으레 진행하는 검사와 대통령의 대화에서 공공연하게 대통령의 치부를 들춰 세를 과시한 것도 그들이다.
한편 직업에 대한 저자의 고백은 사회 정의 실현을 꿈꾸던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20대 땐 내가 쓴 기사로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옳은 방향으로 바뀌기를 원했다. 몇 번의 언론사 인턴을 한 후에야 기자 개인의 신념이 속한 조직의 이해관계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지금은 선의로 지속할 수 있는 밥벌이가 있을까 싶은 회의감에 젖어 있다. 이 책은 그 회의감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하며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태도를 지향한다.
책은 사기범들의 현란하고 다양한 수법들이 유쾌한 비유와 함께 보여주면서 독자 역시 그들에게 넘어가지 않길 당부한다. 잦은 고소고발과 무소불위의 재판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인상적이다. 형사 만능주의를 경계하면서도, 자녀가 있어서인지 소년범죄만큼은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해 이례적이다. 흥미로운 사례와 지식에 빠져 책장을 넘기다 보면 범죄를 둘러싼 다양한 인간 군상과 법의 본질, 그리고 우리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