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과 '배타미'에게 회사란 무엇인가

두 여성의 욕망이 일터를 향하다

by 안녕하세요

일터는 생존 현장인 동시에 욕망 실현의 장

남성 육아휴직, 여성의 유리천장과 임금 격차 해소 등 양성평등 제도 필요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여성의 삶을 다룬 미디어 콘텐츠를 보게 됐다. 영화 '82년생 김지영'과 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다. 두 영화의 주인공은 모두 82년생 동갑이지만, 2019년 기준 서른여덟을 겪는 두 사람의 방식은 꽤 이질적이다. 남편의 주도로 아이를 낳게 된 김지영은 퇴직 후 가사와 육아에 얽매여 '노을을 보면 심장이 쿵 내려앉'을 만큼 자존감을 잃은 채 살아가고, 10살 연하 남자 친구를 만난 배타미는 자신과 예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는 남자친구와 비혼 주의인 자신의 가치관 사이에서 갈등한다. 언뜻 보면 굉장히 다른 두 여성의 군상이지만, 기혼 여성과 비혼 여성 삶을 대표하는 이들의 모습은 한국사회의 결혼 제도가 기혼 혹은 미혼의 30대 여성에게 갖는 의미를 직간접적으로 드러냈다.


결혼은 강한 결속과 책임을 요구한다. 평생 자신의 배우자와 함께 살도록 법적으로 묶여 있는 관계이며, 자녀가 있다면 양육의 의무 역시 이 울타리 안에서 주어진다. 전자는 개인과 개인의 감정을 법적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감정적인 부담을 주고, 후자는 출산과 양육에 따른 비용이 크다는 점에서 경제적인 부담이 된다. 배타미는 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구속받고 싶지 않아 비혼을 선언했고, 김지영은 시터를 고용하는 대신 직접 아이를 키우며 돌봄 비용을 들지 않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돌봄 노동을 전적으로 떠안은 김지영은 자신의 삶을 돌보지 못해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내는 정체 모를 질환을 앓게 된다.


드라마 속에서 배타미가 결혼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된다. 경쟁이 치열한 직장에서 퇴근해 집에 오면 자신의 몸도 추스리기 힘들고, 개인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식이다. 결혼을 한 여성은 시간이 흘러 자녀 계획을 세우고, 그 이후 퇴직해 아이를 돌보거나 워킹맘이 된다. 아니 꼭 아이를 낳지 않더라도, 집안과 집안의 만남인 한국의 결혼 제도 속에서 '며느리'라는 역할은 독립적인 개인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김지영은 영화에서 그 현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일상이 꼭 나쁘지만은 않아. 가끔은 행복하다는 생각도 들어. 하지만 어떨 땐 꼭 갇혀 있는 기분이 들어."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김지영(정유미 분)'과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의 주인공 '배타미(임수정 분)'.



김지영은 전 직장의 상사가 차린 회사로 복직해 글을 쓰면서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내면이 텅 빈 듯한 모습의 영화 전반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배타미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자신을 내던진다. 상사의 잘못 때문에 나간 청문회에서 한 국회의원을 저격해 유명인사가 되고, 이 때문에 해고된 뒤로는 경쟁사로 이직해 업계 점유율을 역전시킨다. 미성년자 성매매 사실을 폭로한 배타미에게 이 국회의원이 욕망의 근원을 묻자 그녀는 말한다. "내 욕망엔 계기가 없어. 내 욕망은 내가 만드는 거야. 근데 네 욕망은 불법이야." 유수 IT기업의 경영진과 주요 직책을 여성이 맡고, 성추행한 남자에게 전치 12주의 폭행으로 앙갚음하는 등 이 드라마의 여성 서사는 비현실적일 만큼 주도적이다. 그리고 주도적으로 일을 해낼 뒤 성취가 있을 때의 만족스러운 표정은 두말할 나위 없이 감명 깊다.


물론 현실 속의 일터는 드라마만큼 우아하거나 극적이진 않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상존하는 곳이며, 무의미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행위도 견뎌야 하는 곳이 밥그릇의 세계다. 하지만 이 영역은 그 대가가 평가절하될 수 있을지언정 화폐로 환산 가능하다. 가사나 육아 등의 노동은 대체로 집에서 이뤄지며, 그 대가로 '가정의 평화' 정도를 보장받는다. 그리고 화폐처럼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이 '평화'는 결국 가사나 육아 노동을 하는 개인의 효능감과 자존감을 떨어트린다. 자아실현 등의 막연하고도 이상적인 이유로 막연한 일터로의 복귀를 그리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개인 영역에선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남성도 아이와의 시간을 갖고 싶어 육아휴직을 내고, 아이가 있는 여성도 자신의 효능감과 돈벌이를 위해 일터에 나가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소수의 정규직 남성이 과도한 야근을 하기보다, 유연근무제나 탄력근무제로 아이에게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근무형태를 확대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이 성별과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승진하거나 임금을 받고, 남성이 육아휴직을 해도 눈치 주지 않는 분위기도 필요하다. 제도가 개인의 역할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을 때엔, 같은 해에 동갑내기 두 여성의 간극을 보여주는 콘텐츠는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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