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에 게으르다고 쓰여 있는 건 아니겠지
"그냥 무난하게 다니겠는데? 좀 답답하겠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한 언니와 갑자기 타로를 본 날, 복직 후 회사에 무탈하게 잘 다닐 수 있을지 궁금해한 내 물음에 대한 타로 봐주시는 분이 한 대답이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여서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임신 전 이직을 시도했었던 이 회사를 복직 후에는 계속 다녀야 하나 싶어 조금은 답답한 심정이 들기도 했다.
"본인은 그렇게 부지런한 성격은 아니어서, 이직하려면 많이 준비해야 된대."
추가로 이직운을 물어본 내게 돌아온 답이었다. 타로카드 한 장을 더 뽑은 뒤 나온 카드를 본 이후였다. 7개월 된 아이를 복직 전에 어린이집에 적응시키겠다며 3~4시간 머물게 하는 동안, 남편이 출근한 뒤 해가 중천에 뜨고도 침대에서 나올 생각이 없던 내 실상을 보고 하는 얘기 같아 낯뜨거웠다. 사실이었다. 임신 전에도 지금의 회사가 답답하다고 여기면서도, 매달 말이면 따박따박 통장에 입금되는 월급에 만족해하며 입고 싶은 옷, 먹고 싶은 음식을 사는 데 만족하던 나였다.
이직 시도를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회사에서 일찍 끝나는 날이면 채용공고를 뒤져 회사 성향을 파악한 뒤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내 면접을 본 적도 있었다. 육아휴직에 들어가 있을 때에도 가고 싶었던 회사의 채용 공고가 떠서 아기를 재운 뒤 맞춤법 검사기를 돌려가며 자기소개서를 내기도 했다. 직군도 다양한 이들 채용 경쟁에서 면접까지 올라가기도 했지만, 결국 최종 합격한 곳은 없었다.
문제는 내 안에 있었다. 이력에 맞게 그럴싸한 자기소개서를 쓰긴 하지만, 다른 경쟁자에 비해 나은 뭔가가 내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성별이나 학력을 스펙으로 내놓지만, 그런 부분에서 내로라할 면이 없으면 색깔이라도 뚜렷해야 한다. 내게는 그 선명한 정체성이 없었다. 자소서에선 그럴듯하게 나를 꾸며도,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지는 이유였다.
워킹맘의 일·가정 양립에 대한 조언을 담은 <나는 워킹맘입니다> 저자는 여성의 커리어 잔치가 대부분 20대에 끝난다고 했다. 20대 여성이 야심 차게 자신의 10년, 20년 뒤를 회사에서의 차장 혹은 부장급 관리자로 그리지만,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언제부턴가 경력 상에서 더 오를 수 없는 장벽을 만나게 된다는 얘기였다. 미혼 여성을 결혼할 인력으로, 기혼 여성을 출산을 앞둔 인력으로, 워킹맘을 아이 때문에 언제든 사표를 낼 수 있는 인력으로 보는 인식 탓이다.
30대 초반에 열심히 이직하려고 몸부림치던 나는, 결혼과 출산 여부와 별개로 나도 모르게 경력 상의 하강 곡선을 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하강 곡선을 급등시킬 만큼의 '개인기'를 가지고 있진 않던 차에 한눈에 확 띄는, 워킹맘이라는 역할이 오늘의 타로 결과를 이끌었을 것이다.
출산 전에 회사에 바라는 점은 굉장히 많았다. 회사가 유연하고 개방적인 조직이길 바랐고, 개인의 성장을 위해 많은 기회를 주는 곳이길 바랐다. 연봉과 복지는 두말할 나위 없었고 일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한 덕목이었다. 워킹맘이 된 지금, 회사에 바라는 점은 별로 없다.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하원 시키기 위해 평일에 정시 퇴근할 것, 시댁이나 친정에 아이 돌봄을 미리 말해 일정을 조율할 수 있도록 야근이 사전에 예정돼 있을 것. 이 두 가지다. 한국에선 이조차 지켜지지 않은 회사가 많은 듯해 그렇지 않은 회사에 다니는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과 똑같이 결혼, 출산 등 생의 중요한 기점을 지난 남성은 가족 부양을 위해 회사의 어려운 상황도 무리 없이 견디는 인력으로 보는 점을 감안하면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혼과 출산이 남성이나 여성 어느 쪽에게 더 손해인지 따지고 싶진 않다. 손해를 따질수록 결혼은 누군가 손해를 보면 누군가는 이득을 보는 제로섬 같은 제도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결혼과 출산이 내게 주는 장점을 떠올리는 일이다. 배우자 덕분에 합의하고 타협하는 방법을 알게 됐고, 아이 덕분에 새로운 나를 발견해 가고 있다. 그리고 이 점은 배우자나 아이 모두 비슷하게 느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발을 디딘 이 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최선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나와 내 주변과 회사에 증명하는 일이, 결국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