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첫날 짜릿했지만...박탈감은 묘하네
회의감 가득한 미소 짓기까지의 시간, 한 달
사무실 공기마저 상쾌하던 느낌은 잠시
왠지 자꾸 소외되는 기분은 그저 기분 탓?
다른 부서 워킹맘 선배와 동질감 느끼고 위로받았지만
이런 마음으로 회사 오래 다녀도 괜찮을까
어느덧 복직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아이를 두고 어떻게 일을 할 수 있나 하는 심란함 반, 그래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도감 반을 떠안은 채 복귀한 일터였다. 첫날엔 그렇게 발걸음이 가벼울 수 없었다. 답답하게 느껴졌던 사무실의 공기마저 상쾌하게 느껴졌다. 내 자리가 있고, 내가 버는 돈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효능감은 생각보다 정신건강에 꽤 도움이 되는 감정이었다.
다른 부서에 가서 복직했다는 인사를 하고, 내 자리에 앉아 컴퓨터 설정을 몇 개 바꿔놓으니 점심시간이 됐다. 저녁 회식을 잘하지 않는 부서이기에 점심이라도 부서끼리 먹나 했지만, 상사는 맛있게 먹으라는 말을 남기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약간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남은 날 동안 기회는 많으므로,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원래 맡고 있었던 일이 전부다 내게로 돌아오지 않고, 일부만 돌아왔을 땐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업무분장 표를 본 한 선배는 내게 그 표가 다소 충격적이었다는 말까지 했다. 원래 했던 일 중을 다 주지 않은 채 다른 남자 직원에게 남겨둘 필요가 있냐는 의문이었다.
그때부터 내 마음에도 이상한 의심이 생겼다. 내가 동료와 부서 회식을 하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내가 해오던 일은 더 이상 이 부서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신호일지도 몰랐다. 오래 쉬어서 업무 능력이 떨어졌으니 서서히 감각을 익히라는 의도일까, 아니면 이 쪼개진 업무 범위를 유지한 채 이 정도의 역할만 하라는 뜻일까.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느낀 묘한 박탈감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우연히 다른 부서의 선배 워킹맘과 밥을 먹으면서 알게 됐다. 그도 일하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복직 후 자신 밑으로 들어온 빠릿빠릿한 남자 후배가, 남자인 자신의 상사와 담배 한 번만 피고 오면 자신이 모르던 일이 진행돼 있었다고.
"그거 가지고 내일 외근 가면 돼." "네, 내일까지 드리겠습니다." 이런 대화에서 '그거'가 뭔지, 내일 어디로 외근을 가는지, 내일까지 '뭘' 드리는지 그 선배는 모르게 되는 식이었다. 선배는 내용을 모르니 중간에 끼어들기 조심스럽고, 그러다 보니 중요한 일을 자꾸 놓치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업무에서 자신이 배제되는 듯한 소외감으로 이어진다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그 원인을 우리가 최근 겪은 변화에서 찾게 됐다. 수시로 연차를 내고 아기를 돌보러 가야 하는 워킹맘에게, 일부러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는 건 아닐까.
나..배려해서 쉬라고 하는거지? 맞지?
"아이는 어떻게 하고 회사에 나오느냐" 물으면서 휴가내면 눈치
어쩌면 나의 상사와 워킹맘 선배의 상사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그냥 해왔던 대로 일을 하다 출산하는 여직원들의 공백을 메울 누군가를 찾았고, 육아휴직 동안 그 동료와 동료로서의 정서를 공유했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직원이 있어도 그 관성을 놓지 못하고, 일단 편한 사람부터 찾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편한 사람은 모두 남자였다. 이 과정에서 나와 선배는 업무에서 자꾸 배제되는 느낌을 받고, 자존감은 떨어지고, 회사에서 제 몫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심란해졌다. 피해를 입었다기엔 뚜렷한 가해자가 없었지만 박탈감은 선연했다.
내가 남자였다면 어땠을까. 남자의 배우자 출산휴가는 2019년 현재 10일이니, 출산을 이유로 3개월 이상 쉬지 않았을 것이다. 육아휴직은? 통계청의 '2019 일·가정 양립 지표'를 보면 육아휴직 사용자는 9만9199명으로 육아휴직을 낸 남성은 17.8%에 그쳤다. 전년대비 46.7% 늘어나서 이 수치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또 오래 쉬는 현실은 여전히 공고해 보인다. 남성보다 여성의 공백이 길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내가 느낀 박탈감을 성별과 무관한 차별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의 배우자는 육아에 나보다 더 노련한 편이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곤히 자고 있는 아기를 깨우고 싶을 만큼 아이에 대한 애착이 크다. 남편과 나 둘 다 일을 하고 있으니 나도 육아의 최전방에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내가 먼저 아이의 상황을 파악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생각엔 아빠나 엄마 같은 성별의 구분이 없었으면 좋겠다.
"아이를 어디에 맡기고 출근하느냐", "어린이집에 맡기기엔 아기가 너무 어리지 않느냐" 하는 물음을 아빠에게도 자연스럽게 물을 수 있어야 내가 느껴던 묘한 자괴감이 들지 않을 것 같다. 육아에는 성별의 구분이 없으므로 누구나 아이를 돌보기 위해 쉴 수 있고, 그 공백의 빈도가 잦고 공백이 길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 속에 있는 나는 그저 미봉책을 떠올릴 뿐이다. 자괴감을 애써 무시하면서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아직은 몸이 성치 않으니 업무에 천천히 적응시키려는 상사의 '복안'이겠지. 매해 막내가 다녀왔었던 외근에 나를 보내 조금이라도 수고비를 챙기라는 의미이겠지. 그래도 이 곳은 눈치는 보일지언정 연차를 허가해주기는 하니까.
이런 이유라도 생각해내지 않으면, 회사에서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는 자괴감에 생각이 너무 많아질 것 같다. 그러면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해져서 일에도 육아에도 모두 집중하지 못하게 돼 일상이 무너질 수 있다. 애써 좋은 점을 찾아 보려하지만 그 이면에 이런 얽히고설킨 심정을 억누른 채 서늘하게 냉소하는 나는, 이대로 앞으로도 괜찮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