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럽게 상처를 어루만지는 영화 <윤희에게>
영화 <윤희에게>에서 등장인물은 자신에게 소중한 가족이나 친구를 위해 어떤 사실을 알고도 모른 채 한다. 고등학생 새봄은 엄마의 특별한 친구에게서 온 편지를 읽고도 그 존재를 섣불리 묻지 않고, 대신 친구가 사는 지역인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쥰의 고모 역시 자신의 조카가 처음 연모한 대상이 심상치 않음을 조카의 부치지 못한 편지를 통해 알게 되지만, 쥰에게 조언하는 대신 조용히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같은 성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결코 따뜻하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새봄의 엄마 윤희 역시 자신의 딸이 담배도 피우고, 남자 친구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새봄에게 구태여 묻지 않는다.
이들의 행동은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상대방의 행동이나 과거에 개입하며 자신의 인생관을 펼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상대방의 아픈 곳에 대해 언급하면서 섣불리 상처를 자극하기보다, 짐짓 모른 채 함으로써 한 걸음 물러나 상처에 대해 섣불리 알거나 평가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만큼 상대방을 아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의 톤은 전반적으로 고요하면서도 괴괴하지 않고, 겨울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춥지 않다. 새봄은 자신의 남자친구 존재와 흡연 사실을 알면서도 눈 감아준 엄마에게 놀랐다는 반을 보이면서도, 짐짓 비밀이 밝혀져서 안도하는 표정을 짓는다. 누구에게나 은밀한 내면은 감추고 싶은 동시에 누군가에겐 알려 이해받고 싶은 진실일 수 있어서일 것이다.
멍하거나 텅 빈 듯한 표정을 짓고, 눈물을 그렁거리도 하는 영화 초반의 윤희는 후반부에서 단단하고 밝은 모습으로 변모한다. 새봄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한 윤희는, 그제서야 자신의 감정과 존재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과거의 자신은 전남편, 낡은 가구와 함께 고향에 버려둔 채 새봄과 서울에 올라온 그는 어떤 새로운 시작이라도 감당할 준비가 된 것만 같다.
영화를 보기 전에 개인적인 일로 마음이 먹먹했는데, 꽉 막힌 듯한 기분이 영화가 끝난 후에는 조금 뚫린 기분이 들었다. 윤희처럼 나도 시간이 흐르고 어떤 계기가 생기면,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일만한 여유가 생길 것이다.